DUKKI KIM


센트럴파크의 홍관조를 바라보며 느끼는 '소확행(小確幸)'
류동현 미술 저널리스트


"서랍 안에 반듯하게 개켜 돌돌 만 깨끗한 팬츠가 잔뜩 쌓여 있다는 것은 인생에서 작지만 확실 한 행복의 하나(줄여서 소확행)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이건 어쩌면 나만의 특이한 사고방식인지 도 모르겠다....(중략)...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러닝셔츠를 새로 꺼내 머리부터 꿸 때의 기분 역시 소확행 중 하나다.."(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게르한스섬의 오후≫의 <소확행> 중 에서)
'소확행(小確幸)'이라는 단어가 있다. 갓 구은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잘 정돈된 속옷이 잔뜩 쌓여있는 것, 면 냄새가 풍기는 흰 러닝셔츠를 입을 때의 기분 등 무라카미 하루키 가 자신의 수필을 통해 처음 소개한 이 단어는 소소한 일에서 느끼는 기분좋은 일상의 행복을 일컫는다.

김덕기의 그림 속에는 이 '소확행'의 풍경이 담겨있다. 가족과 일상 속 행복,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의 즐거움을 주제로, 점묘법으로 표현된 선명하고 따뜻한 색감과 장식적인 요소의 도상들 이 김덕기의 화면을 채우고 있다. 필자는 2001년 봄으로 넘어가는 추운 겨울, 취재원과 기자로 처음 만났다. 당시 작가의 화면은 지금 보여주는 화풍과는 달랐는데, 동양화의 퇴묵을 이용한 짙은 검은 색의 간결한 도상과 노란 배경이 담백한 구성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작가의 그림 속에서 풍겨 나오는 행복의 감각이다. 2008년 이후 변화한 밝고 선명한 색감의 작업 속에서도 이 주제는 변하지 않았다.

부산의 소울아트스페이스의 개관 12주년을 기념해 2018년 2월 14일까지 열리는 <김덕기-카 디널이 보이는 풍경전>에는 이러한 주제를 담고 있는 다채로운 작업 20여 점을 선보인다. 기존 의 가족과 일상의 행복을 보여주는 작품들과 몇 년 전 가족과 다녀온 이탈리아 여행 작품 등 '가 족 시리즈'와 '여행 시리즈'를 망라했다. 여기에 지난 봄에 다녀온 뉴욕의 풍경을 작가 만의 시 선으로 재구성한 신작을 선보였다.

전시 제목으로도 사용된 <뉴욕-카디널이 보이는 풍경>은 작가가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찾아갔을 때 카페에 앉아서 본 풍경이다. 붉은 색 벽돌의 오래된 식당과 뉴욕의 마천루, 그 사이에 공원 속 화사한 나무와 꽃 나무 위에 홍관조(카디널) 두 마리가 앉아있다. 영화 <배트맨>에서는 '고 담시'로 불리기도 하는 암울한 뉴욕의 풍경은 김덕기의 심상을 거쳐 경쾌함과 편안함이 공존하 는 아름다운 도시로 탈바꿈한다.

<뉴욕-브라이언 파크>는 지금까지 보여준 작업과는 다른, 작가 작업의 또다른 변곡점으로 읽힌 다. 기존의 정교한 점묘 기법과 선명한 색감의 호방한 붓터치가 적절히 섞이면서 화면의 생동감 과 입체감이 풍부해졌다. 원경의 점묘기법과 근경의 붓터치가 믹스된 형식을 통해, 화면의 깊이 를 더한 2015년작 <피렌체-아르노 강변의 여름>에서 한단계 발전한 변화다. <피렌체> 작업과 는 반대로 점묘 기법의 풀밭을 근경에 배치하고, 선명하고 시원한 색감의 붓터치로 배경의 빌딩 과 나무를 채운 화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흡사 자신이 뉴욕의 브라이언 파크에서 직접 이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공원 옆 테이블에 앉아서 쉬고 있는 각양각색의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 또한 휴식에 대해, 여행에 대해, 행복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보라색 바탕에 연인, 개와 고양이, 나무, 꽃 등을 장식적으로 표현한 <뉴욕의 봄>, 공원을 배경 으로 쉬고 있는 개 두 마리가 주인공인 <뉴욕-친구들>은 과거와는 또다른 색감과 붓터치를 드러 내는 작업이다. 여기에 <뉴욕 맨해튼-브루클린 브릿지가 보이는 풍경>은 '라인 드로잉 시리즈' 의 뉴욕 버전이다. 어렸을 때 종종 했던 유성 크레파스와 수성 물감을 이용해 그린 듯한 뉴욕은 흰색의 라인과 몽환적인 푸른 색 바탕, 화면 사이사이 채워진 파스텔톤 색들로 아름답고 아기자 기한 꿈 속의 세상으로 변주된다. 뉴욕 브루클린 다리와 엠파이어 스테이츠 빌딩, 자유의 여신 상이 자유로이 화면 속을 거닐고 있다. <봄의 왈츠-당우리의 봄>은 이번 출품작 중 꽤 독특하게 다가왔다. 노란색의 붓질로 채운 화면은 지금까지 보여준 작가의 정교한 화면 구성과는 달리 즉 흥적이고 강렬했다. 그가 공부했던 동양화 속 필획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 외에도 기존의 가족에 관한 작품과 이탈리아 여행 작품들이 이번 전시에 풍성함을 더한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을 통해 2008년 이후 선보였던 작가의 점묘법 중심 작업에서 많은 변주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목도하게 된다. 최근 작업은 점묘 기법과 함께 물감이 섞인 날것의 붓터치를 화면속에 혼재시킴으로써, 화면에 생동감과 깊이감을 더한다. 지난 '가족 시리즈'가 행복에 대 한 작가의 관념을 올망졸망한 점묘 기법으로 표현했다면, 최근의 '여행 시리즈'는 여행에서 만 나는 사실적인 세상을 호방한 붓터치 기법으로 표출하는 것이다.

과거 필자는 작가의 작업에 대해 '한국화의 장욱진'이라고 했다. 장욱진의 작업세계를 잘 드러 냈던 '신사실파'와 연결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장욱진은 1947년 김환기, 유영국 등과 함께 '신사실파'를 결성했다. 사물들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 안에 내재해 있는 근원적 이고 정신적인 본질을 추구했던 '신사실파'처럼, 김덕기 또한 자신이 보고 경험하는 가족과 일 상의 소소한 행복을 자신만의 시선과 관념으로 화폭에 수놓고, 여행지의 풍경을 행복과 즐거움 이 담겨있는 사의(寫意)의 풍경화로 변모시킨다.

이렇게 김덕기의 그림 속은 일상과 여행의 '소확행'으로 가득 차있다. 그리고 하나 더 있다. 김 덕기 그림 자체가 전시장에서 직접 눈앞에 두고 보는 우리에게 '소확행'의 기분을 느끼게 한다 는 점이다. 차가운 겨울로 넘어가던 늦은 가을 날, 작업실에서 접한 작가의 그림에서 나또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감정을 느꼈으니까. 아마 그의 그림이 가지고 있는 '크고 확실한 미덕' 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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