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의 수묵 3인의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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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tudio 작성일16-06-20 00:19 조회1,89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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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의 수묵 3인의 표정
공평아트센터 한국화 대기획 15
김덕기·박종갑·박재철 수묵展
2002_0522 ▶ 2002_0528
공평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공평동 5-1
Tel. 02_733_9512
1. 연암 박지원의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라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사통팔달의 거리에서 한 남자가 울고 있다. 연암이 왜 우느냐고 물었다. 남자는 자신은 장님인데 수십 년 만에 눈을 뜨게 되어 동네 구경을 나왔다고 했다. 그런데 도무지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겠고 정신이 없어 어떻게 집으로 돌아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연암은 말했다.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 세 작가의 작업실을 차례로 둘러보면서 나는 문득 연암이 한 말이 떠올랐다. 아무런 매듭없이 흘러가는 일상에 관한 한 나는 장님이 아닐까. 아니 장님처럼 지내기를 원한다는 편이 솔직할 것이다. 감수성의 촉각을 곤두세운 다음 '사는 것은 재미없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재미를 찾아보려는' 주변의 노력들을 바라만 보는 나는 장님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나에게 이들의 작품들은 생활의 순간들과 나를 밀착시켜보라고 제법 유혹을 한다. 이들은 아무런 극적 흥미도 일으키지 않는 일상의 사소한 에피소드에서 희노애락의 감정을 끌어내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일상을 다룬 작품들이라고 해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길 꿈꾸는 판타지도 있고, 일상에 천착하는 리얼리즘도 있을 수 있으며 일상에 대한 명상도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이들 작가들의 작품을 굳이 분류하자면 일상 속으로의 침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그림들은 나로 하여금 나를 둘러싼 일상을 낯설게 그리고 느긋하게 바라보도록 하였다. 그리고 조용히 내 안으로 가라앉으라고 권하는 듯했다. 나는 시끄럽고 소음으로 가득 찬 세상의 분주함 속에서 잠시 조용히 나를 바라보는 기회를 가질 수가 있었다. 비록 그들 작품의 하상(河床)을 이루는 것이 지독한 고독이나 죽음일지라도 나는 그것들을 바라보면서 잠시나마 눈을 감지 않고도 집으로 돌아갈 어떤 힘을 얻을 수가 있었다.
2. 일상성은 1990년대 이후 한국미술을 특징짓는 성격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미술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 서구 중심의 미술로부터의 이탈, 예술적 규범의 퇴조 등-의 하나인 '삶의 예술'이 한국미술에서, 그리고 한국화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비단 한국화단에만 국한되지 않고 미술계 전반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조각, 설치, 서양화, 한국화를 하는 작가들은 모두 자신의 출신학과와는 상관없이 작품을 제작하며 장르 개념이 무너진 지 오래다. 그리고 이러한 매체와 표현의 영역이 확대되면서 이미지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증가하는 것과 동시에 삶과 일상성이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한국화에서 이러한 특징들이 처음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시기는 1980년대 중반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전까지 한국미술, 특히 한국화를 둘러싸고 있던 여러 가지 경전화(經典化)된 관념들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대신 그 자리를 '지금 여기-현장성과 구체성'에 대한 관심이 차지하게 되었다. 처음 '구체적인 삶'에 대한 관심은 빌딩숲이나 고층 아파트, 공사현장 등 번화한 도시의 모습이나 포장마차, 건물 유리창의 블라인드에서 스며나오는 불빛 사이로 보이는 인간 군상 등을 주로 다루며 도시 소시민의 삶에 대한 연민과 서정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점차 서사성과 리얼리티를 추구하면서 역사와 삶의 풍경을 담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한국화에 대한 아무런 선입견 없이 맨눈으로 자신들을 둘러싼 남루하고 사소한 풍경들을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다. ● 인습화되고 정형화된 기존 한국화의 형식에서 벗어나 삶의 현장으로 육박해 들어가는 이러한 경향에는 여러 가지 배경이 있을 것이다. 특히 1980년대 초의 민중미술, 같은 무렵에 전개된 수묵화 운동은 한국화가 전통적인 관념에서 탈피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 당시에 이루어졌던 논쟁―결국 지필묵은 정신인가 물질인가에 대한―과 함께 한국화에서 매재(媒材)에 대한 탐색은 이미 저만치 시작되고 있었다. 이 논쟁은 서화일치정신이 무너진 현대에도 과연 지필묵 자체나 혹은 이 재료를 사용하는 행위 자체가 동양의 전통적인 회화정신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인지를 짚어보고자 한 것이었으며 결과적으로 지필묵은 단지 다양한 표현가능성을 보여주는 매재의 하나일 뿐이라는 점에 주목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기존의 한국화의 패러다임으로는 포괄할 수 없는 새로운 작품 경향들이 다양하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김덕기, 박재철, 박종갑은 이러한 시대의 세례를 받은 작가들이며 한국화를 둘러싼 갖가지 경전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자신들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들 그림의 출발은 자신을 둘러싼 일상, 혹은 바로 나 자신의 삶이다. 그림을 단지 그림으로 보는 이들이 담담하게, 진실하게 보여주고자 하는 세계는 삶의 속내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시선이다.
No.: 58, Read: 22, Vote: 0, 2005/01/12 15:05:30
공평아트센터 한국화 대기획 15
김덕기·박종갑·박재철 수묵展
2002_0522 ▶ 2002_0528
공평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공평동 5-1
Tel. 02_733_9512
1. 연암 박지원의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라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사통팔달의 거리에서 한 남자가 울고 있다. 연암이 왜 우느냐고 물었다. 남자는 자신은 장님인데 수십 년 만에 눈을 뜨게 되어 동네 구경을 나왔다고 했다. 그런데 도무지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겠고 정신이 없어 어떻게 집으로 돌아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연암은 말했다.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 세 작가의 작업실을 차례로 둘러보면서 나는 문득 연암이 한 말이 떠올랐다. 아무런 매듭없이 흘러가는 일상에 관한 한 나는 장님이 아닐까. 아니 장님처럼 지내기를 원한다는 편이 솔직할 것이다. 감수성의 촉각을 곤두세운 다음 '사는 것은 재미없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재미를 찾아보려는' 주변의 노력들을 바라만 보는 나는 장님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나에게 이들의 작품들은 생활의 순간들과 나를 밀착시켜보라고 제법 유혹을 한다. 이들은 아무런 극적 흥미도 일으키지 않는 일상의 사소한 에피소드에서 희노애락의 감정을 끌어내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일상을 다룬 작품들이라고 해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길 꿈꾸는 판타지도 있고, 일상에 천착하는 리얼리즘도 있을 수 있으며 일상에 대한 명상도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이들 작가들의 작품을 굳이 분류하자면 일상 속으로의 침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그림들은 나로 하여금 나를 둘러싼 일상을 낯설게 그리고 느긋하게 바라보도록 하였다. 그리고 조용히 내 안으로 가라앉으라고 권하는 듯했다. 나는 시끄럽고 소음으로 가득 찬 세상의 분주함 속에서 잠시 조용히 나를 바라보는 기회를 가질 수가 있었다. 비록 그들 작품의 하상(河床)을 이루는 것이 지독한 고독이나 죽음일지라도 나는 그것들을 바라보면서 잠시나마 눈을 감지 않고도 집으로 돌아갈 어떤 힘을 얻을 수가 있었다.
2. 일상성은 1990년대 이후 한국미술을 특징짓는 성격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미술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 서구 중심의 미술로부터의 이탈, 예술적 규범의 퇴조 등-의 하나인 '삶의 예술'이 한국미술에서, 그리고 한국화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비단 한국화단에만 국한되지 않고 미술계 전반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조각, 설치, 서양화, 한국화를 하는 작가들은 모두 자신의 출신학과와는 상관없이 작품을 제작하며 장르 개념이 무너진 지 오래다. 그리고 이러한 매체와 표현의 영역이 확대되면서 이미지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증가하는 것과 동시에 삶과 일상성이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한국화에서 이러한 특징들이 처음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시기는 1980년대 중반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전까지 한국미술, 특히 한국화를 둘러싸고 있던 여러 가지 경전화(經典化)된 관념들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대신 그 자리를 '지금 여기-현장성과 구체성'에 대한 관심이 차지하게 되었다. 처음 '구체적인 삶'에 대한 관심은 빌딩숲이나 고층 아파트, 공사현장 등 번화한 도시의 모습이나 포장마차, 건물 유리창의 블라인드에서 스며나오는 불빛 사이로 보이는 인간 군상 등을 주로 다루며 도시 소시민의 삶에 대한 연민과 서정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점차 서사성과 리얼리티를 추구하면서 역사와 삶의 풍경을 담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한국화에 대한 아무런 선입견 없이 맨눈으로 자신들을 둘러싼 남루하고 사소한 풍경들을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다. ● 인습화되고 정형화된 기존 한국화의 형식에서 벗어나 삶의 현장으로 육박해 들어가는 이러한 경향에는 여러 가지 배경이 있을 것이다. 특히 1980년대 초의 민중미술, 같은 무렵에 전개된 수묵화 운동은 한국화가 전통적인 관념에서 탈피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 당시에 이루어졌던 논쟁―결국 지필묵은 정신인가 물질인가에 대한―과 함께 한국화에서 매재(媒材)에 대한 탐색은 이미 저만치 시작되고 있었다. 이 논쟁은 서화일치정신이 무너진 현대에도 과연 지필묵 자체나 혹은 이 재료를 사용하는 행위 자체가 동양의 전통적인 회화정신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인지를 짚어보고자 한 것이었으며 결과적으로 지필묵은 단지 다양한 표현가능성을 보여주는 매재의 하나일 뿐이라는 점에 주목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기존의 한국화의 패러다임으로는 포괄할 수 없는 새로운 작품 경향들이 다양하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김덕기, 박재철, 박종갑은 이러한 시대의 세례를 받은 작가들이며 한국화를 둘러싼 갖가지 경전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자신들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들 그림의 출발은 자신을 둘러싼 일상, 혹은 바로 나 자신의 삶이다. 그림을 단지 그림으로 보는 이들이 담담하게, 진실하게 보여주고자 하는 세계는 삶의 속내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시선이다.
No.: 58, Read: 22, Vote: 0, 2005/01/12 15: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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