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폭에 행복을 담은 화가 김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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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tudio 작성일16-09-17 15:24 조회3,04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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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와서 오기 불편하셨죠? 드릴게 커피밖에 없네요
화가 김덕기를 만난 곳은 그가 재직하고 있는 고등학교의 미술실이었다. 창가에는 비를 막기 위해 대걸레가 걸쳐져있고 대형 캔버스며 각종 미술용품이 빼곡한, 조금 지저분하기에 더 학교다운 그런 곳이다. 비오는 날 학교 미술실에서 마시는 커피는 꽤나 운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조각 같은 얼굴은 아니지만 환한 미소나 부드러운 목소리의 훈남 스타일인 그도 꽤나 운치 있어 보인다.
남학교가 아닌 여학교의 미술 선생님이었다면 몇몇 열성팬쯤은 거느렸지 싶다.
그림 속에는 삶이 투영되어 집니다
비오는 날 고등학교 미술실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 미술교사는 요샛말로 잘 나가는 화가다. 90년대 중반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각종 공모전에서 입상경력을 쌓더니 1998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바쁜 교사 생활 속에서도 매년 한두 차례씩 개인전을 열며 작품 활동을 쉬지 않고 이어왔다.
10년간 그의 그림에서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림의 주제가 언제나 가족 안에 머물러 있다는 것. 그리고 10년간 변한 것이 있다면 세월이 흐르는 만큼 그림 속의 가족이 성숙해 져 간다는 것이다.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는 아기 신발이나 부부 찻잔 같은 정물화를 주로 그렸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직장을 다니고 아빠가 되며 생활인으로서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니 그림의 내용도 바뀌더군요. 때로는 잠들어 있는 아이만 봐도 기쁘고 놀이동산에 놀러가기도 하지만 때론 아이를 업고 늦은 밤 응급실로 달려야 하기도 하듯이 우리가 산다는 것이 기쁨과 슬픔, 행복과 아픔이 다양하게 맞물려 있더라고요. 우리 가족의 일상이 그림이 되는 거죠.”
그의 그림은 마치 그의 일기와 같다. 그림 속에 아버지는 항상 자상한 미소를 띠고 안경을 낀 모습이 영락없이 화가 자신이며, 그림 속 그의 아이는 점점 자라나서 유모차를 타던 아이가 이제 아빠와 자전거도 타고 숨바꼭질도 하며 커나가고 있다. 엄마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아이에게 말을 태워주는 아빠의 모습이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며 놀고 있는 가족 그림을 보고 있자면 ‘아~ 이집 식구는 이렇게 사는 구나’싶으면서, 그림을 하나하나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네 이야기와 다르지 않아 살며시 웃음이 나온다.
살다보니 내 가족의 이야기가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더라는 그는, 그래서 요즘은 가족 뿐 아니라 이웃의 모습도 그림에 담고 있다. 그의 작품은 10년간 변함없이 가족 사이에 녹아있는 사랑과 행복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평범한 이야기들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담을 수 있는 삶의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다.
원색은 건강함과 풍요로움을 전하는 색
그는 요즘 짐보리의 내년도 달력에 들어갈 그림을 작업하고 있다. 원색을 통해 가족이 주는 따스함을 표현하는 그의 그림이 짐보리와 만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짐보리를 처음 만났을 때 짐보리의 원색적인 칼라가 그가 추구하는 칼라와 같아서 깜짝 놀랐단다. 누가 먼저 도용했는지 알아봐야겠다며 웃는 그는 “짐보리 칼라는 명료하고 간결하면서도 보편적이고 풍요로워서 서로 나눌 수 있는 색감”이라며 “이런 색감은 아이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건강함을 전하는 색”이라고 칼라 예찬론을 펼친다.
그의 그림도 그렇다. 간결하고 보편적이어서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그런 그림이다. 짐보리 달력 속 그림을 미리 훔쳐보면 바닷가 모래밭에 짐보가 놀고 있고, 소풍을 나와 점심을 먹는 가족 사이에 짐보가 있듯 가족의 이야기가 있는 곳에 어디든 짐보가 함께 한다. 짐보는 아이 뿐 아니라 부모에게도 가족이다. “짐보리에서 아이와 아빠가 함께 비눗방울 놀이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늘 바라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가족의 모습이라 한참을 바라보았죠. 그림 속 가족은 제 가족이면서 짐보리 가족들의 이야기인 셈입니다. 그래서 짐보리 작업은 정말 부담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그와 짐보리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제 9살 난 그의 아들이 어릴 적 반포 짐보리 회원이었다. 아들과 짐보리에 갔는데 아빠들이 별로 없어서 혼자서 얼마나 쑥스러웠던지 아직도 기억이 난다는 그는, 짐보리 수업이 아이에게 ‘엄마 아빠와 손잡고 함께 놀이동산을 찾는 즐거운 느낌’을 줄 수 있어서 좋았다고.
화가이자 교사인 그는 요즘 지적 발달에 초점을 맞춘 주입식 교육에는 반대다.
“아이들은 그 또래에 맞는 자극이 필요하거든요. 미술적 자극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물을 정밀하게 그리는 기능적인 미술은 더 커서도 할 수 있어요. 다양한 칼라로 시각적 자극을 주는 것이 어린 시절에는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또한 아이가 스스로 던져진 미술 용품을 탐색하고, 붓이 지나간 자국을 보고, 물감이 물을 만나서 퍼지는 흐름들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어린 아이들에게는 필요한 자극이죠.”
아이들이 숲의 이미지를 가질 수 있도록
그의 작품은 우리가 일상에서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내는 사물에 대해 세심하고도 따뜻한 시선에서 시작한다. 아내의 화장대나 아들의 일상을 지나치지 않고 관찰하는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여주 평야에 가 보신 적이 있나요? 제 고향이 여주인데, 여주 평야가 얼마나 섬세한지 보지 않고는 모릅니다. 남한 강변의 들판과 늪이 다 제 놀이터였어요. 지금도 생생해요. 용이 나온다는 용건늪, 더러워서 꾸정늪, 만두모양이라 만두산이라고 불렀던 그 자연에서 보냈던 시간 하나하나가 다 지금 제 그림의 바탕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질녘 노을 지는 하늘과 강변의 붉은 빛의 변화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칠 수 있냐고 반문한다.
“아이에게 ‘넌 숲의 이미지가 뭔지 아냐’고 물어보면 요새 아이들은 뭐라고 할까요? 숲은 그저 초록이 아니에요. 숲 한가운데 서면 주변은 어둡지만 역광으로 들어오는 태양의 눈부심이 있어요. 이런 것들은 책상에서는 절대로 알 수 없죠. 어릴 때는 놀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도록 노는 것은 어린 시절이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거잖아요. 그러다보면 어른이 되었을 때 무슨 일을 하든지 다 밑천이 되지 않을까요? 경험만큼 큰 재산이 없다 잖아요.”
화가_김덕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졸업. 1998년 덕원 갤러리에서의 첫 개인전 이후 가족의 행복과 평화, 일상의 삶, 어린시절 고향에 대한 추억과 자연에 대한 사랑을 작가 특유의 섬세함으로 작품 안에 선보이며 화면의 깊이를 만들어가고 있다. 2001년에는 언론사 기자들이 추천하는 올해의 추천 작가에도 선정된 바 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여러 곳에 주요 작품이 소장되고 있다. <즐거운 우리집 (Gallery H, 서울)>, <무지개(이화익갤러리, 서울)> 등 17회의 개인전을 비롯하여 <가족 보듬기 Family Fun(광주시립미술관, 광주)> 등 49회의 국내외 단체전과 초대전에 참가했다.
(www.dukki.com)
그림은 그에게 삶의 진정성을 발견하는 도구이자 과정이라지만 그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자면 보는 이도 삶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그의 그림이 가진 힘이다.
초등학교 시절, 작문보다 그림일기가 좋았던, 장래희망이 ‘프랑스 파리에 가서 세계적인 화가가 되는 것’이었던 그는 이제 가을 싱가포르 페어를 시작으로 해외로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갈 예정이다.
성공이 예감된다. 그가 들려주는 포근한 가족 이야기는 한국 사람이 아니어도 다 통하는 마음일 테니까.
No.: 197, Read: 52, Vote: 0, 2008/05/16 22:14:30
비가 와서 오기 불편하셨죠? 드릴게 커피밖에 없네요
화가 김덕기를 만난 곳은 그가 재직하고 있는 고등학교의 미술실이었다. 창가에는 비를 막기 위해 대걸레가 걸쳐져있고 대형 캔버스며 각종 미술용품이 빼곡한, 조금 지저분하기에 더 학교다운 그런 곳이다. 비오는 날 학교 미술실에서 마시는 커피는 꽤나 운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조각 같은 얼굴은 아니지만 환한 미소나 부드러운 목소리의 훈남 스타일인 그도 꽤나 운치 있어 보인다.
남학교가 아닌 여학교의 미술 선생님이었다면 몇몇 열성팬쯤은 거느렸지 싶다.
그림 속에는 삶이 투영되어 집니다
비오는 날 고등학교 미술실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 미술교사는 요샛말로 잘 나가는 화가다. 90년대 중반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각종 공모전에서 입상경력을 쌓더니 1998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바쁜 교사 생활 속에서도 매년 한두 차례씩 개인전을 열며 작품 활동을 쉬지 않고 이어왔다.
10년간 그의 그림에서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림의 주제가 언제나 가족 안에 머물러 있다는 것. 그리고 10년간 변한 것이 있다면 세월이 흐르는 만큼 그림 속의 가족이 성숙해 져 간다는 것이다.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는 아기 신발이나 부부 찻잔 같은 정물화를 주로 그렸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직장을 다니고 아빠가 되며 생활인으로서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니 그림의 내용도 바뀌더군요. 때로는 잠들어 있는 아이만 봐도 기쁘고 놀이동산에 놀러가기도 하지만 때론 아이를 업고 늦은 밤 응급실로 달려야 하기도 하듯이 우리가 산다는 것이 기쁨과 슬픔, 행복과 아픔이 다양하게 맞물려 있더라고요. 우리 가족의 일상이 그림이 되는 거죠.”
그의 그림은 마치 그의 일기와 같다. 그림 속에 아버지는 항상 자상한 미소를 띠고 안경을 낀 모습이 영락없이 화가 자신이며, 그림 속 그의 아이는 점점 자라나서 유모차를 타던 아이가 이제 아빠와 자전거도 타고 숨바꼭질도 하며 커나가고 있다. 엄마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아이에게 말을 태워주는 아빠의 모습이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며 놀고 있는 가족 그림을 보고 있자면 ‘아~ 이집 식구는 이렇게 사는 구나’싶으면서, 그림을 하나하나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네 이야기와 다르지 않아 살며시 웃음이 나온다.
살다보니 내 가족의 이야기가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더라는 그는, 그래서 요즘은 가족 뿐 아니라 이웃의 모습도 그림에 담고 있다. 그의 작품은 10년간 변함없이 가족 사이에 녹아있는 사랑과 행복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평범한 이야기들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담을 수 있는 삶의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다.
원색은 건강함과 풍요로움을 전하는 색
그는 요즘 짐보리의 내년도 달력에 들어갈 그림을 작업하고 있다. 원색을 통해 가족이 주는 따스함을 표현하는 그의 그림이 짐보리와 만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짐보리를 처음 만났을 때 짐보리의 원색적인 칼라가 그가 추구하는 칼라와 같아서 깜짝 놀랐단다. 누가 먼저 도용했는지 알아봐야겠다며 웃는 그는 “짐보리 칼라는 명료하고 간결하면서도 보편적이고 풍요로워서 서로 나눌 수 있는 색감”이라며 “이런 색감은 아이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건강함을 전하는 색”이라고 칼라 예찬론을 펼친다.
그의 그림도 그렇다. 간결하고 보편적이어서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그런 그림이다. 짐보리 달력 속 그림을 미리 훔쳐보면 바닷가 모래밭에 짐보가 놀고 있고, 소풍을 나와 점심을 먹는 가족 사이에 짐보가 있듯 가족의 이야기가 있는 곳에 어디든 짐보가 함께 한다. 짐보는 아이 뿐 아니라 부모에게도 가족이다. “짐보리에서 아이와 아빠가 함께 비눗방울 놀이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늘 바라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가족의 모습이라 한참을 바라보았죠. 그림 속 가족은 제 가족이면서 짐보리 가족들의 이야기인 셈입니다. 그래서 짐보리 작업은 정말 부담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그와 짐보리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제 9살 난 그의 아들이 어릴 적 반포 짐보리 회원이었다. 아들과 짐보리에 갔는데 아빠들이 별로 없어서 혼자서 얼마나 쑥스러웠던지 아직도 기억이 난다는 그는, 짐보리 수업이 아이에게 ‘엄마 아빠와 손잡고 함께 놀이동산을 찾는 즐거운 느낌’을 줄 수 있어서 좋았다고.
화가이자 교사인 그는 요즘 지적 발달에 초점을 맞춘 주입식 교육에는 반대다.
“아이들은 그 또래에 맞는 자극이 필요하거든요. 미술적 자극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물을 정밀하게 그리는 기능적인 미술은 더 커서도 할 수 있어요. 다양한 칼라로 시각적 자극을 주는 것이 어린 시절에는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또한 아이가 스스로 던져진 미술 용품을 탐색하고, 붓이 지나간 자국을 보고, 물감이 물을 만나서 퍼지는 흐름들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어린 아이들에게는 필요한 자극이죠.”
아이들이 숲의 이미지를 가질 수 있도록
그의 작품은 우리가 일상에서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내는 사물에 대해 세심하고도 따뜻한 시선에서 시작한다. 아내의 화장대나 아들의 일상을 지나치지 않고 관찰하는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여주 평야에 가 보신 적이 있나요? 제 고향이 여주인데, 여주 평야가 얼마나 섬세한지 보지 않고는 모릅니다. 남한 강변의 들판과 늪이 다 제 놀이터였어요. 지금도 생생해요. 용이 나온다는 용건늪, 더러워서 꾸정늪, 만두모양이라 만두산이라고 불렀던 그 자연에서 보냈던 시간 하나하나가 다 지금 제 그림의 바탕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질녘 노을 지는 하늘과 강변의 붉은 빛의 변화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칠 수 있냐고 반문한다.
“아이에게 ‘넌 숲의 이미지가 뭔지 아냐’고 물어보면 요새 아이들은 뭐라고 할까요? 숲은 그저 초록이 아니에요. 숲 한가운데 서면 주변은 어둡지만 역광으로 들어오는 태양의 눈부심이 있어요. 이런 것들은 책상에서는 절대로 알 수 없죠. 어릴 때는 놀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도록 노는 것은 어린 시절이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거잖아요. 그러다보면 어른이 되었을 때 무슨 일을 하든지 다 밑천이 되지 않을까요? 경험만큼 큰 재산이 없다 잖아요.”
화가_김덕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졸업. 1998년 덕원 갤러리에서의 첫 개인전 이후 가족의 행복과 평화, 일상의 삶, 어린시절 고향에 대한 추억과 자연에 대한 사랑을 작가 특유의 섬세함으로 작품 안에 선보이며 화면의 깊이를 만들어가고 있다. 2001년에는 언론사 기자들이 추천하는 올해의 추천 작가에도 선정된 바 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여러 곳에 주요 작품이 소장되고 있다. <즐거운 우리집 (Gallery H, 서울)>, <무지개(이화익갤러리, 서울)> 등 17회의 개인전을 비롯하여 <가족 보듬기 Family Fun(광주시립미술관, 광주)> 등 49회의 국내외 단체전과 초대전에 참가했다.
(www.dukki.com)
그림은 그에게 삶의 진정성을 발견하는 도구이자 과정이라지만 그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자면 보는 이도 삶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그의 그림이 가진 힘이다.
초등학교 시절, 작문보다 그림일기가 좋았던, 장래희망이 ‘프랑스 파리에 가서 세계적인 화가가 되는 것’이었던 그는 이제 가을 싱가포르 페어를 시작으로 해외로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갈 예정이다.
성공이 예감된다. 그가 들려주는 포근한 가족 이야기는 한국 사람이 아니어도 다 통하는 마음일 테니까.
No.: 197, Read: 52, Vote: 0, 2008/05/16 22: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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