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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tudio 작성일16-09-17 15:11 조회1,83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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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봄단장 _ 한지에 수묵채색 73 x 104 cm 2005
[개인소장 . Private Collection]
화가 김덕기 : ‘행복을 그립니다’
“제가 늘 가족의 행복을 그리지만, 살다보면 크고 작은 걱정거리들이 늘 있잖아요? 어렸을 때 여주 평야에서 먹구름이 몰려가고 난 뒤의 무지개를 보았을 때가 생각나요. 무지개를 보면 꿈, 희망, 사랑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요. 제 그림을 보았을 때 그런 무지개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화가 김덕기는 올 4월20일(목)에 종로구 송현동의 이화익 갤러리에서 ‘무지개’라는 타이틀로 개인전을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실제로 최근의 그림에는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를 붓으로 찍어서 그대로 그린 듯 화사한 원색으로 가득 차 있다. 마당이 딸린 작은집에는 형형색색 계절 꽃과 더불어 가족들의 웃음이 만발하고 있다. 서울의 보성고등학교의 미술실이 그의 작업실이다. 밝고 환한 물감들이 여기 저기 놓여있는 작업실은 밝고 명랑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림을 전혀 몰라도 즐길 수 있는 그의 그림은 난해한 현대 미술에 당황하던 관객들의 마음을 위로한다. 거창하게 내세우지 않지만 소리 없이 콜렉터들이 애호하는 그림이다.
엄마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아들과 말이 되어 놀아주는 아빠, 좁은 베란다에서 아내가 정성껏 돌 본 화분들, 가족들의 나들이, 아내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는 남편, 서로 이마를 맞대고 옹기 종기 모여 있는 마을. 도무지 그림의 주제가 될 것 같지 않은 소소한 일상의 기쁨과 행복이 그의 화폭을 가득 메우고 있다. 미술사학자 츠베탕 토도로프는 “회화는 본질적으로 그려진 것을 예찬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김덕기는 이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 가장 그려질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한 평론가는 그의 그림을 보고 장욱진의 천진난만한 자연친화적 감성과 이중섭의 그림 속에 있는 따뜻한 가족애를 떠올렸다. 흔하지 않지만 분명 한국 미술에서 계보가 이어져 내려온 그림이다.
평소의 작업 모습을 보여 달라고 하자 그는 그림 위에 엎드려 한쪽 팔을 베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물감을 쓰는 채색화가 아니라 목탄으로 그림을 그릴 때는 이렇게 작업을 한다고 한다. 마치 어린 아이가 그림일기를 쓸 때의 표정과 자세이다. 그림을 그리면서 그는 때로는 힘들었고 때로는 행복했던 지난 날로 돌아간다. 동네 어귀의 아치형으로 머리를 맞대고 있던 향나무, 여주 평야의 아늑한 노을, 처마가 휘어진 빨간 지붕의 집들......추억의 터널을 지나면서 지난날은 고통의 흔적을 지우고 선명한 색으로 물든다. 정원이 딸린 작은 집은 작가가 꿈꾸는 가장 행복한 배경이다. 그의 그림은 지금 현재의 모습에 근거하지만 추억과 꿈이 함께 하고 있어 정취가 더해진다.
행복한 지금의 가족의 모습을 그리면서 그는 요즘 새삼스럽게 고1 때 세상을 뜨신 아버지의 사랑을 되새긴다. 아버지의 마음이 자신이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 그대로였음을 느낀다.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은 순간이다. 아버지를 직접 그리지는 않지만, 그 사랑은 그대로 그의 그림 속에 스며든다. 여주의 고향집 개울가에서 아이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고 있으면 노을을 등지고 흰수염을 날리며 돌아오시던 아버지. 개성에서 월남하여 한약방을 하시던 아버지는 67살의 나이에 막내아들을 얻으셨고 그 막내아들을 퍽이나 귀해 하셨다. 중2때 어머니를 여의고 서울예고로 진학하여 낯선 서울 생활을 하던 그에게 아버지의 죽음은 아픈 상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힘든 생활을 할 때 레슨비도 받지 않고 그림을 가르쳐주신 서울예고의 김광운 선생, 그가 끝까지 대학에 다닐 수 있도록 도와주신 서울대학교의 김병종 선생은 그가 늘 마음속에 두고 있는 고마운 은사들이다. 그림 속에 꼭 등장하는 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지지자이다.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두 개의 컵, 나란히 있는 두 켤레의 신발 그림은 아내와의 사랑을 그린 것이다. 아내에게 선물할 꽃다발을 뒤로 감추고 아내의 뽀뽀를 받는 그림은 소박하지만 오랫동안 인상에 남는 그림이다.
IMF가 닥치고 그가 다니던 미술 학원이 문을 닫고 나서 당장의 생계를 위해서 신문을 돌리기도 하였다. 새벽 1시부터 시작하는 일은 6~7시나 되어서 끝났다. 추운 겨울 여주 벌판에 휘황히 떠 있는 겨울 달을 그린 ‘본향을 찾아서’시리즈가 이 시기에 그려졌다. 그는 힘들었던 이 시절의 기억을 요즘도 그의 그림 속에 얼굴을 내밀기도 한다. ‘본향을 찾아서’는 이제 그림 속의 그림으로 꽃이 핀 화분, 아이의 장난감 등 행복한 상징물들에 둘러싸여 있다. 어려웠던 시절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으려는 것이다. 아들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그의 그림은 또 달라졌다. 아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은 그의 그림을 더 풍요롭게 해 주었다. 1998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그는 한 해도 쉬지 않고 전시를 하였다. 그의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고 또 그만큼 인정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사랑을 표현할 때 마음을 아끼지 않듯이 재료도 아끼지 않는다. 과슈, 목탄, 먹을 동시에 사용한다. 기본이 되는 것은 그가 우연히 발견한 퇴묵 기법이다. 먹물을 음지에 하루 정도 나두면 판화의 잉크처럼 끈적거리게 되는데 동양화의 전통의 농담법에서 식상함을 느끼던 차에 발견된 새로운 표현 방식이었다. 퇴묵을 넓은 붓으로 종이를 쓸 듯이 전체적으로 바르고 그 위에 채색 물감을 바르면 채색 밑의 퇴묵이 은은하게 얼굴을 내비친다. 원색의 화사한 바탕색을 얻되 그것이 날것으로 보이지 않고 오래 묵은 듯, 삶의 깊이가 담겨진다. 그 위에 채색을 하고 다시 한 번 퇴묵을 입힌 후에 드로잉을 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그의 작품은 태어난다.
김덕기만의 독특한 양식화로 묘사된 사물들은 어린 아이의 그것처럼 천연덕스럽다. 슬픔이 없듯이 그의 그림에는 그림자가 없다. 그의 그림에서는 무엇이든지 두 개 세 개가 정겹게 짝을 이루고 있다. 호접란은 고개를 숙여서 하트 모양을 만들고 꽃나무 역시도 팔을 둥글게 만들어서 하트 모양을 만들고 있다. 연이어 서 있는 집들은 지붕이 맞닿아 있으며 서로 벽이 되고 방이 되어 준다. 집과 집 사이의 벽은 천연덕스럽게 나무가 되기도 한다. 그의 그림 속에서는 모든 사물들이 서로 기대고 짝을 이루며 지극한 평화와 행복을 누리고 있다. 무릇 모든 살아있는 것이 누려야 할 당연한 행복과 평화를 그린 그의 그림은 행복 부적 혹은 일종의 거대한 행복기원도인 셈이다. 대상에 대한 직설적이고 명료한 표현, 행복을 바라는 기복 정신은 그의 그림이 우리 고유의 민화에 닿아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그림이 새롭고도 뿌리가 있는 이유이다.
최근에 그가 즐겨하는 작업 중의 하나는 바로 도자기 작업이다. 도자기 엑스포에서 여주 출신 작가들의 조그만 개인전이 있었다. 그 때 도자기 작가들의 백자 위에 그림을 그려보는 게 어떻겠냐는 권유로 직접 도자기를 굽기 시작했다. 집을 그리는 대신 집을 짓고 그 위에 특유의 천진한 어법으로 집의 안을 그리는 도자 조각의 매력에 그는 푹 빠져 있다. 유머러스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작품들이다.
마티스도 자신의 그림이 안락의자처럼 편안했으면 좋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김덕기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가 전하는 행복 바이러스에 기꺼이 감염되기를 원할 터이다. 행복한 그림은 행복한 삶에서 나온다. “제가 바라보는 대상 속에 사랑하고 아껴야 할 제 인생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저 제 인생을 기록하듯 그리는 겁니다.” 30대 중반의 젊은 작가의 겸손한 웃음이 수채화처럼 번져 나온다.
김덕기는 1969년 경기 여주 출생. 1993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졸업. 1998년 서울 덕원미술관 전시를 시작으로 15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다수의 국내외 주요 단체전에 참여 하였다. 1996년 대한민국 진경공모 대상전 입선, 1998년 제2회 서울미술전람회 특선, 1999년 99 MBC 미술대전 특선 등 10여회의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다. 현재 서울의 보성고등학교의 미술 교사로 재직 중이다.
글. 이진숙
No.: 187, Read: 45, Vote: 0, 2007/07/15 22:48:29
[개인소장 . Private Collection]
화가 김덕기 : ‘행복을 그립니다’
“제가 늘 가족의 행복을 그리지만, 살다보면 크고 작은 걱정거리들이 늘 있잖아요? 어렸을 때 여주 평야에서 먹구름이 몰려가고 난 뒤의 무지개를 보았을 때가 생각나요. 무지개를 보면 꿈, 희망, 사랑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요. 제 그림을 보았을 때 그런 무지개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화가 김덕기는 올 4월20일(목)에 종로구 송현동의 이화익 갤러리에서 ‘무지개’라는 타이틀로 개인전을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실제로 최근의 그림에는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를 붓으로 찍어서 그대로 그린 듯 화사한 원색으로 가득 차 있다. 마당이 딸린 작은집에는 형형색색 계절 꽃과 더불어 가족들의 웃음이 만발하고 있다. 서울의 보성고등학교의 미술실이 그의 작업실이다. 밝고 환한 물감들이 여기 저기 놓여있는 작업실은 밝고 명랑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림을 전혀 몰라도 즐길 수 있는 그의 그림은 난해한 현대 미술에 당황하던 관객들의 마음을 위로한다. 거창하게 내세우지 않지만 소리 없이 콜렉터들이 애호하는 그림이다.
엄마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아들과 말이 되어 놀아주는 아빠, 좁은 베란다에서 아내가 정성껏 돌 본 화분들, 가족들의 나들이, 아내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는 남편, 서로 이마를 맞대고 옹기 종기 모여 있는 마을. 도무지 그림의 주제가 될 것 같지 않은 소소한 일상의 기쁨과 행복이 그의 화폭을 가득 메우고 있다. 미술사학자 츠베탕 토도로프는 “회화는 본질적으로 그려진 것을 예찬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김덕기는 이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 가장 그려질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한 평론가는 그의 그림을 보고 장욱진의 천진난만한 자연친화적 감성과 이중섭의 그림 속에 있는 따뜻한 가족애를 떠올렸다. 흔하지 않지만 분명 한국 미술에서 계보가 이어져 내려온 그림이다.
평소의 작업 모습을 보여 달라고 하자 그는 그림 위에 엎드려 한쪽 팔을 베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물감을 쓰는 채색화가 아니라 목탄으로 그림을 그릴 때는 이렇게 작업을 한다고 한다. 마치 어린 아이가 그림일기를 쓸 때의 표정과 자세이다. 그림을 그리면서 그는 때로는 힘들었고 때로는 행복했던 지난 날로 돌아간다. 동네 어귀의 아치형으로 머리를 맞대고 있던 향나무, 여주 평야의 아늑한 노을, 처마가 휘어진 빨간 지붕의 집들......추억의 터널을 지나면서 지난날은 고통의 흔적을 지우고 선명한 색으로 물든다. 정원이 딸린 작은 집은 작가가 꿈꾸는 가장 행복한 배경이다. 그의 그림은 지금 현재의 모습에 근거하지만 추억과 꿈이 함께 하고 있어 정취가 더해진다.
행복한 지금의 가족의 모습을 그리면서 그는 요즘 새삼스럽게 고1 때 세상을 뜨신 아버지의 사랑을 되새긴다. 아버지의 마음이 자신이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 그대로였음을 느낀다.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은 순간이다. 아버지를 직접 그리지는 않지만, 그 사랑은 그대로 그의 그림 속에 스며든다. 여주의 고향집 개울가에서 아이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고 있으면 노을을 등지고 흰수염을 날리며 돌아오시던 아버지. 개성에서 월남하여 한약방을 하시던 아버지는 67살의 나이에 막내아들을 얻으셨고 그 막내아들을 퍽이나 귀해 하셨다. 중2때 어머니를 여의고 서울예고로 진학하여 낯선 서울 생활을 하던 그에게 아버지의 죽음은 아픈 상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힘든 생활을 할 때 레슨비도 받지 않고 그림을 가르쳐주신 서울예고의 김광운 선생, 그가 끝까지 대학에 다닐 수 있도록 도와주신 서울대학교의 김병종 선생은 그가 늘 마음속에 두고 있는 고마운 은사들이다. 그림 속에 꼭 등장하는 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지지자이다.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두 개의 컵, 나란히 있는 두 켤레의 신발 그림은 아내와의 사랑을 그린 것이다. 아내에게 선물할 꽃다발을 뒤로 감추고 아내의 뽀뽀를 받는 그림은 소박하지만 오랫동안 인상에 남는 그림이다.
IMF가 닥치고 그가 다니던 미술 학원이 문을 닫고 나서 당장의 생계를 위해서 신문을 돌리기도 하였다. 새벽 1시부터 시작하는 일은 6~7시나 되어서 끝났다. 추운 겨울 여주 벌판에 휘황히 떠 있는 겨울 달을 그린 ‘본향을 찾아서’시리즈가 이 시기에 그려졌다. 그는 힘들었던 이 시절의 기억을 요즘도 그의 그림 속에 얼굴을 내밀기도 한다. ‘본향을 찾아서’는 이제 그림 속의 그림으로 꽃이 핀 화분, 아이의 장난감 등 행복한 상징물들에 둘러싸여 있다. 어려웠던 시절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으려는 것이다. 아들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그의 그림은 또 달라졌다. 아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은 그의 그림을 더 풍요롭게 해 주었다. 1998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그는 한 해도 쉬지 않고 전시를 하였다. 그의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고 또 그만큼 인정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사랑을 표현할 때 마음을 아끼지 않듯이 재료도 아끼지 않는다. 과슈, 목탄, 먹을 동시에 사용한다. 기본이 되는 것은 그가 우연히 발견한 퇴묵 기법이다. 먹물을 음지에 하루 정도 나두면 판화의 잉크처럼 끈적거리게 되는데 동양화의 전통의 농담법에서 식상함을 느끼던 차에 발견된 새로운 표현 방식이었다. 퇴묵을 넓은 붓으로 종이를 쓸 듯이 전체적으로 바르고 그 위에 채색 물감을 바르면 채색 밑의 퇴묵이 은은하게 얼굴을 내비친다. 원색의 화사한 바탕색을 얻되 그것이 날것으로 보이지 않고 오래 묵은 듯, 삶의 깊이가 담겨진다. 그 위에 채색을 하고 다시 한 번 퇴묵을 입힌 후에 드로잉을 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그의 작품은 태어난다.
김덕기만의 독특한 양식화로 묘사된 사물들은 어린 아이의 그것처럼 천연덕스럽다. 슬픔이 없듯이 그의 그림에는 그림자가 없다. 그의 그림에서는 무엇이든지 두 개 세 개가 정겹게 짝을 이루고 있다. 호접란은 고개를 숙여서 하트 모양을 만들고 꽃나무 역시도 팔을 둥글게 만들어서 하트 모양을 만들고 있다. 연이어 서 있는 집들은 지붕이 맞닿아 있으며 서로 벽이 되고 방이 되어 준다. 집과 집 사이의 벽은 천연덕스럽게 나무가 되기도 한다. 그의 그림 속에서는 모든 사물들이 서로 기대고 짝을 이루며 지극한 평화와 행복을 누리고 있다. 무릇 모든 살아있는 것이 누려야 할 당연한 행복과 평화를 그린 그의 그림은 행복 부적 혹은 일종의 거대한 행복기원도인 셈이다. 대상에 대한 직설적이고 명료한 표현, 행복을 바라는 기복 정신은 그의 그림이 우리 고유의 민화에 닿아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그림이 새롭고도 뿌리가 있는 이유이다.
최근에 그가 즐겨하는 작업 중의 하나는 바로 도자기 작업이다. 도자기 엑스포에서 여주 출신 작가들의 조그만 개인전이 있었다. 그 때 도자기 작가들의 백자 위에 그림을 그려보는 게 어떻겠냐는 권유로 직접 도자기를 굽기 시작했다. 집을 그리는 대신 집을 짓고 그 위에 특유의 천진한 어법으로 집의 안을 그리는 도자 조각의 매력에 그는 푹 빠져 있다. 유머러스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작품들이다.
마티스도 자신의 그림이 안락의자처럼 편안했으면 좋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김덕기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가 전하는 행복 바이러스에 기꺼이 감염되기를 원할 터이다. 행복한 그림은 행복한 삶에서 나온다. “제가 바라보는 대상 속에 사랑하고 아껴야 할 제 인생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저 제 인생을 기록하듯 그리는 겁니다.” 30대 중반의 젊은 작가의 겸손한 웃음이 수채화처럼 번져 나온다.
김덕기는 1969년 경기 여주 출생. 1993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졸업. 1998년 서울 덕원미술관 전시를 시작으로 15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다수의 국내외 주요 단체전에 참여 하였다. 1996년 대한민국 진경공모 대상전 입선, 1998년 제2회 서울미술전람회 특선, 1999년 99 MBC 미술대전 특선 등 10여회의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다. 현재 서울의 보성고등학교의 미술 교사로 재직 중이다.
글. 이진숙
No.: 187, Read: 45, Vote: 0, 2007/07/15 22:4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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