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까사리빙No.38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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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tudio 작성일16-09-16 00:56 조회1,24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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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가족이 무엇이길래...
글/ 정박미경
영화 <어바웃 어 보이>에서 휴그랜트는 아기를 안을 줄도 모르는 서른여덟 철부지 남자 윌을 연기했다. 가정을 꾸리거나 가족을 책임지는 데는 도통 관심이 없고, 즐기고 부담없이 헤어질 수 있는 여자만 골라 사귀는 이 남자. 섬처럼 ‘쿨’하게 살아가는 윌은 열두 살짜리 꼬마 마커스를 만나면서 인간과 진정한 관계맺기를 시작한다. 이 영화의 매력은 마음을 나누는 관계들을 섣불리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엮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애틀의 잠못이루는 밤>이 그랬던 것처럼, 홀로 있는 아빠에 대한 안쓰러움과 부재중인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이유로 “가정을 꾸리는 것이 행복하다”는 메시지를 들이밀지 않는다. 대신,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것은 노력과 정성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 남을 이해하는 일은 곧 세상을 조금 더 깊게 이해하는 것이므로 그 수로를 할 마음이 있느냐에 따라 삶의 지혜가 생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관계는 따뜻하나 그 끈을 언제든지 열어두는 태도를 보면서 ‘저 사람들이 가족이었다면 저런 관계가 가능했을까’라는 질문을 문득 던져보게 된다. 그리고 곧 도리질이 쳐진다. 가족이라는 공동체 속의 관계들은 왜 저렇게 될 수 없을까? 왜 부부 사이의 예의, 부모의 사랑, 자식의 도리를 빙자해 서로에게 상처 입힐까?
개인의 성숙과 자유를 지지하는 가족을 위해
우리나라 출산율은 이제 1.17명으로 세계 최저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제 한국의 많은 여성들은 더 이상 아이를 낳고 싶어하지 않는다. 유독 여자들만이 그렇겠는가? 저출산율 문제는 사회 변화의 여러 측면을 반영하는 것이겠지만 중요한 사실은 가족에서 아이가 차지하는 의미가 변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제 여자나 남자나 할 것 없이 가족을 꾸린다는 것이, 아이를 하나 혹은 둘 갖는 것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때다. 여자와 남자가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가족을 이룬다는 생각은 의심할 여지없는 인생의 목적 내지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의미라고 여겨져 왔다. 한번쯤은 거쳐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과정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큰 의미일 수밖에 없니 않겠는가. 지금은 우리 사회에서 가족은 개인의 성숙과 자유를 지지한다기보다는, 가족원으로서의 의무에 더 중점을 둔다.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딸로서, 아들로서 해야 되는 일들의 목록은 거꾸로 생각하면 그 일을 하지 않았을 때 감수해야 되는 고통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일터에서 돈버느라 가족들이 어떤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지 알 수 없고 어머니는 끝도 없는 가사일과 자식들을 어떻게 더 경쟁력 있는 인간으로 키울까 고민하느라 골병이 들고, 아이들은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야 된다는 중압감에 시달리다 못해 어느 순간 대화를 단절한다. 그러나 이 험한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가족이 평안해야 한다는 논리에 묻혀, 혈연은 하늘이 내려준 관계라는 도덕에 묻혀, 가족 안에서의 갈들은 봉합되고 드러나지 않는가. 갈등이 드러나 가족이 흔들리면 ‘정상가족’을 유지해야 얻을 수 있는 행복은 영원히 멀어진다는 공포감이 가족 안에서의 문제들에 직면하기 어렵게 만든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가족 안에서 각자가 수행해야 하는 의무들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혈연관계라고 해서 ‘당연히’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 아닐까.
가족 제일주의, 그 근거없는 편견을 넘어서
사실 가족을 둘러싼 일련의 변화들은 오래 전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어바웃 어 보이>의 휴그랜트처럼 결혼하지 않겠다는 독신주의자들은 꾸준히 늘어가고 평균 결혼연령도 서른에 가까워졌다. 결혼은 하지만 아이는 갖지 않겠다는 부부들도 이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젊은 층일수록 아들을 ‘꼭’ 낳아 대를 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고루하다 못해 야만인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부부가 아니라 혼자 아이를 ㅋ우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아예 결혼이라는 울타리 밖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여성들도 있다. 그동안 가족이라고 일컫던 전형, 우리가 가족하면 떠올렸을 법한 이미지들은 산산히 부서지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정상가족’은 깨지고 있고 가족의 ‘정상성’은 도전받고 있다. 무엇이 가족인가, 무엇이 정상인가 되묻기 시작한다. 아이를 남편 없이 혼자 키우는 것이 왜 비정상이야? 사랑하면 됐지 여자가 이혼했다는 게 무슨 죄야? 왜 꼭 결혼을 해서 가적을 이루고 살아야 되는 거지? ‘정상가족’ 에 합류하지 못해 사회적인 비난과 낙인을 받아야 했던 이들이 이제는 더 이상 그런 가치기준에 따르지 않겠다며 팔을 걷어부치고 있다. 편부 편모 슬하의 자식들은 문제아가 될 소지가 크다는, 이혼녀의 성격적으로 이상이 있을 것이라는, 엄마가 젊었을 때 아이를 낳으면 머리가 좋다는... 실제로는 어떤 근거도 갖지 못한 채 강력한 사회적 규범으로 자리잡았던 편견들을 깨면서, 개인은 자기가 관계를 맺는 공동체를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가족을 이해하기로 한다면, 혈연으로 맺어졌기 때문에 무엇을 해도 용서가 되는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더욱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서로의 지혜로움을 인정해야 된다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지금 가족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고민의 실마리가 조금은 보이지 않을까. 그리고 혈연뿐만 아니라 마음과 영혼을 주고받으면서 개인의 성숙과 자유와 평안함을 줄 수 있는 공동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감성이 생긴다면, 정상가족에 끼지 못해 낙인찍히는 많은 상처입은 사람들이 좀더 행복하게 세상을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어바웃 어 보이>에서 그리는 진하지만 ‘쿨’한 관계가 가족안에서 가능해질 것도 같다. 도대체 가족이 무엇이길래!
정박미경 씨는
이화여대 여성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20세기 여성사건사>라는 책을
공저했으며, 현재 패미니스트 저널 <이프>의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화가 김덕기 씨는
서울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수차례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통해
따뜻하고 푸근한 그림들을 선보이고 있다.
No.: 115, Read: 29, Vote: 0, 2005/01/14 11:14:21
글/ 정박미경
영화 <어바웃 어 보이>에서 휴그랜트는 아기를 안을 줄도 모르는 서른여덟 철부지 남자 윌을 연기했다. 가정을 꾸리거나 가족을 책임지는 데는 도통 관심이 없고, 즐기고 부담없이 헤어질 수 있는 여자만 골라 사귀는 이 남자. 섬처럼 ‘쿨’하게 살아가는 윌은 열두 살짜리 꼬마 마커스를 만나면서 인간과 진정한 관계맺기를 시작한다. 이 영화의 매력은 마음을 나누는 관계들을 섣불리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엮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애틀의 잠못이루는 밤>이 그랬던 것처럼, 홀로 있는 아빠에 대한 안쓰러움과 부재중인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이유로 “가정을 꾸리는 것이 행복하다”는 메시지를 들이밀지 않는다. 대신,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것은 노력과 정성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 남을 이해하는 일은 곧 세상을 조금 더 깊게 이해하는 것이므로 그 수로를 할 마음이 있느냐에 따라 삶의 지혜가 생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관계는 따뜻하나 그 끈을 언제든지 열어두는 태도를 보면서 ‘저 사람들이 가족이었다면 저런 관계가 가능했을까’라는 질문을 문득 던져보게 된다. 그리고 곧 도리질이 쳐진다. 가족이라는 공동체 속의 관계들은 왜 저렇게 될 수 없을까? 왜 부부 사이의 예의, 부모의 사랑, 자식의 도리를 빙자해 서로에게 상처 입힐까?
개인의 성숙과 자유를 지지하는 가족을 위해
우리나라 출산율은 이제 1.17명으로 세계 최저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제 한국의 많은 여성들은 더 이상 아이를 낳고 싶어하지 않는다. 유독 여자들만이 그렇겠는가? 저출산율 문제는 사회 변화의 여러 측면을 반영하는 것이겠지만 중요한 사실은 가족에서 아이가 차지하는 의미가 변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제 여자나 남자나 할 것 없이 가족을 꾸린다는 것이, 아이를 하나 혹은 둘 갖는 것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때다. 여자와 남자가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가족을 이룬다는 생각은 의심할 여지없는 인생의 목적 내지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의미라고 여겨져 왔다. 한번쯤은 거쳐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과정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큰 의미일 수밖에 없니 않겠는가. 지금은 우리 사회에서 가족은 개인의 성숙과 자유를 지지한다기보다는, 가족원으로서의 의무에 더 중점을 둔다.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딸로서, 아들로서 해야 되는 일들의 목록은 거꾸로 생각하면 그 일을 하지 않았을 때 감수해야 되는 고통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일터에서 돈버느라 가족들이 어떤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지 알 수 없고 어머니는 끝도 없는 가사일과 자식들을 어떻게 더 경쟁력 있는 인간으로 키울까 고민하느라 골병이 들고, 아이들은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야 된다는 중압감에 시달리다 못해 어느 순간 대화를 단절한다. 그러나 이 험한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가족이 평안해야 한다는 논리에 묻혀, 혈연은 하늘이 내려준 관계라는 도덕에 묻혀, 가족 안에서의 갈들은 봉합되고 드러나지 않는가. 갈등이 드러나 가족이 흔들리면 ‘정상가족’을 유지해야 얻을 수 있는 행복은 영원히 멀어진다는 공포감이 가족 안에서의 문제들에 직면하기 어렵게 만든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가족 안에서 각자가 수행해야 하는 의무들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혈연관계라고 해서 ‘당연히’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 아닐까.
가족 제일주의, 그 근거없는 편견을 넘어서
사실 가족을 둘러싼 일련의 변화들은 오래 전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어바웃 어 보이>의 휴그랜트처럼 결혼하지 않겠다는 독신주의자들은 꾸준히 늘어가고 평균 결혼연령도 서른에 가까워졌다. 결혼은 하지만 아이는 갖지 않겠다는 부부들도 이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젊은 층일수록 아들을 ‘꼭’ 낳아 대를 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고루하다 못해 야만인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부부가 아니라 혼자 아이를 ㅋ우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아예 결혼이라는 울타리 밖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여성들도 있다. 그동안 가족이라고 일컫던 전형, 우리가 가족하면 떠올렸을 법한 이미지들은 산산히 부서지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정상가족’은 깨지고 있고 가족의 ‘정상성’은 도전받고 있다. 무엇이 가족인가, 무엇이 정상인가 되묻기 시작한다. 아이를 남편 없이 혼자 키우는 것이 왜 비정상이야? 사랑하면 됐지 여자가 이혼했다는 게 무슨 죄야? 왜 꼭 결혼을 해서 가적을 이루고 살아야 되는 거지? ‘정상가족’ 에 합류하지 못해 사회적인 비난과 낙인을 받아야 했던 이들이 이제는 더 이상 그런 가치기준에 따르지 않겠다며 팔을 걷어부치고 있다. 편부 편모 슬하의 자식들은 문제아가 될 소지가 크다는, 이혼녀의 성격적으로 이상이 있을 것이라는, 엄마가 젊었을 때 아이를 낳으면 머리가 좋다는... 실제로는 어떤 근거도 갖지 못한 채 강력한 사회적 규범으로 자리잡았던 편견들을 깨면서, 개인은 자기가 관계를 맺는 공동체를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가족을 이해하기로 한다면, 혈연으로 맺어졌기 때문에 무엇을 해도 용서가 되는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더욱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서로의 지혜로움을 인정해야 된다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지금 가족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고민의 실마리가 조금은 보이지 않을까. 그리고 혈연뿐만 아니라 마음과 영혼을 주고받으면서 개인의 성숙과 자유와 평안함을 줄 수 있는 공동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감성이 생긴다면, 정상가족에 끼지 못해 낙인찍히는 많은 상처입은 사람들이 좀더 행복하게 세상을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어바웃 어 보이>에서 그리는 진하지만 ‘쿨’한 관계가 가족안에서 가능해질 것도 같다. 도대체 가족이 무엇이길래!
정박미경 씨는
이화여대 여성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20세기 여성사건사>라는 책을
공저했으며, 현재 패미니스트 저널 <이프>의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화가 김덕기 씨는
서울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수차례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통해
따뜻하고 푸근한 그림들을 선보이고 있다.
No.: 115, Read: 29, Vote: 0, 2005/01/14 11: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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