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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족의 무지개빛 웃음소리 김덕기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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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tudio 작성일16-09-22 13:09 조회2,6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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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족의 무지개빛 웃음소리 김덕기 화가

봄볕이 뜨거운 날, 남한강을 품고 있는 신륵사를 지나고 도예마을을 지나 여주군 북내면에 김덕기 화가의 작업실이 있다. 나즈막한 야산 밑에 드문드문한 이웃과 밭에 둘러싸여 있는 그의 작업실은 겉에서 보기엔 간단한 창고 같다. 이제 막 전업작가를 시작한 그가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곳이다.





꽃보다 더 좋은 당신

 엄마는 한쪽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말이 된 아빠의 등에 탄 아들. 그 옆엔 포크레인 장난감이 어수선하다. 아빠는 엄마에게 꽃을 건네고 보자기 슈퍼맨 망토를 두른 아들과 원피스 차림의 딸이 곁에서 재잘거린다. 강아지와 나무 밑을 산책하는 식구들 등은 어느 집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풍경들이다. 별로 작품의 주제랄 것도 없는 우리의 일상을 김덕기 화가는 촘촘히 그리고 있다. 가족의 행복은 너 나 할 것 없는 우리 모두의 바램이 아닐까. 붓과 물감이라는 기본 재료로 우리들 행복의 기본인 가족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6.25때 남쪽으로 내려오신 그의 아버지는 67세란 늦은 나이에 막둥이로 김작가를 보셨으니 유난한 사랑을 받고 자랐을 것이다. 중2때 어머니가 먼저, 그리고는 작가가 서울예고를 다닐 때 아버지가 영면에 드시고 만다. 아버지가 세상에 없다는 것만으로도 작가는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몰랐다고 한다. 허름했지만 인심 좋은 하숙방과 때로는 고시원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게 된다. 다른 친구들은 실기레슨으로 바쁠 때 그는 홀로 캔버스를 들고 야외로 나가기 일쑤였다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직 어렸고 힘들었던 그 때가 작가로서의 소양이 자신도 모르게 쌓아진 시기였다. 우선 혼자 많은 시간을 보내는 연습은 충분하고도 남았으며, 나이답지 않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관심이 가게 된 것이다. 그는 서울대학교 동양화과 시절을 자칭 이단아였다고 말한다. 그의 작업은 학교 분위기였던 먹 위주의 간결한 작품과는 거리가 멀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 서클 활동에 정신을 쏟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임을 통해 사람 만나는 것이 좋았고 본인 스스로를 인정하게 되면서, 마음의 안정과 함께 가난한 화가를 아낀 그의 부인도 만날 수 있었다. 첫 개인전을 즈음해서 그는 결혼을 했고,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아내의 아르바이트비와 새벽 신문 배달비가 그들 생활비의 전부였다고 한다. 그 후 서울 보성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되었고, 그들의 사랑과 인생 이야기를 그림에 등장시키면서 삶을 아끼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남들과 똑같은 결혼 생활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그에겐 가슴 깊은 곳에서의 삶의 기적이었음이 분명하다. 작가노트에 있는 글 제목 중엔 <누가 이 천사를 내게 보냈을까?>란 글도 있듯, 그의 아내는 그에게 삶의 이유이고 작업의 주제가 되어주고 있다.

“작은 집이지만 가꿀 수 있는 꽃과 나무가 있어서 만족한다./ 부유하지 않지만 나를 믿어주는 아내와/ 아빠와 엄마를 사랑하는 아들이 있어서 감사한다./ 딱딱하고 차가운 외부의 조건들이 조각신문처럼 찾아오지만/ 꽃피우고 사라지는 사이에 어떤 것은 사라지고 어떤 것은 작아진다./ 오늘도 파란 하늘과 흘러가는 구름을 볼 수 있어서 감사한다.”

감사의 기도 같은 그의 시다. 이런 느낌은 아롱다롱 원색이나 무지개 빛깔로 그려야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림속의 아빠는 결코 권위적이지 않으며, 아이와 마냥 놀아주는 자상한 모습으로 바로 작가 자신이기도 하고 작가가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도저히 감춰지지 않는 그의 행복이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감염되기를 바라며 작업을 할 것이고, 지금의 아무 일 없는 일상에 감사하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듯하다.

앞으로도 이 가족의 이야기는 계속 될 것 같은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 든다.



편안한 필치와 여백의 조화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고운 빛깔의 가족작품이 워낙 유명세를 타서 그렇지 그는 우리의 한지와 먹도 즐긴다. 그의 종이작업은 상당히 오래된 그림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만의 독특한 기법 때문이다. 갈아놓은 먹물을 하루 묵히면 껄쭉해지는데, 그것을 간격을 두고 여러 차례 바르면 한지에 깊이 있는 품격이 느껴진다. 푸근히 스며든 고즈녁한 분위기랄까. 그 위에 기교 없이 편안한 필치로 형상을 그려 넣는다. 그러나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배경 또한 생략한다. 그리고는 생각할 수 있는 여백을 넉넉히 두어 그의 작품은 간결하다. 한지 작업 역시 거창하지 않게 소소한 일상과 그의 심경을 얘기하고 있다. 최근엔 미술에 첨단 테크놀로지를 접합하는 등 목소리를 높이는데 반해 그는 말수를 아낀다. 발표 초기때는 20대 후반의 젊은 작가였던 그는 스스로에게 굳은 확신이 있었다고 한다. 양파 하나를 그리더라도 눈에 보이는 모습만이 아닌 키운 농부의 마음을 함께 느끼고 그려야 한다는 스승의 말씀처럼 소박한 진정성을 정면에 내세웠을 뿐이다. 대담한 생략에서는 오히려 작가적 상상력이 느껴지고 추상작품을 보는 것 같다.




올해부터 그는 학교에 나가지 않는다. 오직 작업에만 온힘을 쏟기 위해 과감히 전업작가를 선택한 것이다. 보장된 미래 연금 같은 교직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협조와 현대 갤러리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고. 갤러리에서 창작지원금이 나올 뿐 아니라 작업 이외에 작품판매부터 저작권 관리, 외국으로의 진출 등 도움이 크다. 손꼽히는 화랑에서 그를 전속 작가로 선택해 소원하던 오직 작업할 수 있는 작가가 된 것이다. 작업실도 화랑 측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채광도 좋고, 무엇보다도 작품 보관실이 제대로다. 그의 가족들도 주말은 이곳에서 함께 보낸다고 한다. 야외로 작업실을 옮긴 화가들은 입을 모아 환경이 바뀌니까 작업도 바뀌더라고 말한다. 어릴 적 추억이 있는 그의 고향 여주의 산과 들에서 그는 작업할 것이고, 아직 파종을 다 하지 못했다며 작업실 옆의 텃밭을 보여준다. 여주 햇살 아래서의 그의 가족 이야기를 앞으로 눈여겨보자.



그는 구김살 없이 당당한 성격이다. 그러면서도 부드러이 남을 배려할 줄 안다. 인터뷰 사진을 찍는 동안에도 사진작가가 원하는 것에 자신의 적당한 당당함을 보태 유쾌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게다가 홈피(www.dukki.com)의 자작시들을 보면 ‘섬세하다’라는 단어로는 부족하다. 그런 성향들이 모여 용기 있게 일상의 소소함으로 일가를 이루었고, 미술 재료 뿐 아니라 도자기에도 그의 행복한 가족은 그려졌다. 이처럼 동양화의 새로운 모습을 만나니 반가운 마음 크다. 그는 이른 나이에 작품성도 인정받았으며 콜렉터들의 인기까지 얻은 편이다. 선수는 선수를 알아보는 법. 작가들 사이에서도 계속해서 인정받는 작가로 남을 수 있도록 젊은 작가적 근성을 잃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강신선


No.: 201, Read: 35, Vote: 0, 2008/09/22 11: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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