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노트

삶은 이처럼 내게 말을 걸어온다. 아들과 함께 차안에서 잠이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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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tudio 작성일21-04-08 18:02 조회6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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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이처럼 내게 말을 걸어온다.

아들과 함께 차안에서 잠이 들다.


오늘은 아들아이가 잠이 잘 오지 안나보다. 안아달라고 하고, 밖으로 나가자고 한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잠을 청하려 한다. 이미 서늘해진 밤공기. 다시 들어온다. 그러나 다시 나가자고 한다. 작은 이불로 아들을 싸고, 안는다. 밖으로 나간다. 바람이 분다. 아들에게 "우리 차안에 들어가 잠잘까?"라고 나는 말한다. 가슴에 아들을 품고 뒷좌석 자리에 앉는다. 아주 조용하고 아늑한 차 속의 환경이 잠을 청하기에 좋은지 아무런 반응 없이 눈을 감고 아들은 도롱 도롱 코를 곤다. 나 또한 뒷좌석에 무거운 머리를 뒤로하고 조심스레 아들이 깰까 눈을 감는다.

<여주 강변 모래백사장에서
나는 아들을 태운 말이 된다.
커다란 공을 굴리며,
저녁노을 빛에 상기된 아내도 보인다.
잔뜩 이삿짐을 실은 커다란 트럭이 사라진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주님께 기도를 드리고,
눈송이처럼 가벼워 보이는 노란나비들 사이로
꽃과 세발자전거를 탄 아들이 보인다.
버드나무가 있는 놀이터엔 위로 아래로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며
시소를 타는 아빠와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뭉게구름과 날아가는 비행기.
출근길 만원버스와 지하철 출발음소리가 요란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아들과 함께 코를 골며 자동차 안에서 자고 있는 것을 알아챈다. 바람에 춤을 추듯 흔들리는 무성한 나무 잎들이 가로등을 간질이고, 커다란 보름달은 아파트 옥상 위에 걸려있다. 한대의 제법 쌀쌀한 기온을 느끼며 아들을 다시 안고 집안으로 들어온다. 자정을 넘긴지 오래다. 아들의 몸이 땀으로 데워있다.
잠든 아들의 모습 속에서 나는 30년 전의 나와 나의 아버지를 보게 된다.

포도알맹이 같이 까만 초롱초롱 빛나는 아이의 눈동자를 응시하노라면 그 속에서는 내 유년시절의 나와 나를 낳아 주신 나의 아버지를 더 이상 감출 수 없게 된다. 그것은 아련한 아름다움의 실체로 내게 다가와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나의 마음은 어느덧 이 작아 보이지만 소중함의 의미를 주는 이미지들에 온통 나를 열고 내게 필요한 에너지를 수혈한다. 따뜻하고 그리워지는 기억의 조각들 속엔 응달진 그늘도 있지만 살며시 들여다보면 나는 살아난다. 오늘이 지나면 잡을 수 없는 좋은 감정의 조각들을 이제는 어제의 추억으로 보내놓고 바라 볼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살아서 그리워 할 수 있어 감사하다.

집 안에는... 식탁에 모여 앉은 가족들이 날마다 마주하며 집 안과 밖을 번갈아 왔다 갔다 한다. 분주한 일들도 가장 중요한 일도 집에 와서는 우기의 빗물에 흠뻑 젖은 우산을 접듯 접게 된다. 그것이 가족이 있는 집이다. 그 안엔 달콤한 사랑도 있고, 위로함도 있으며 고약하게 쓴 시련도 있다. 험준한 산을 넘어야 할 시기도 있게 마련인데 어제로 간 오늘을 돌아보면 감사한 마음이 대부분이다.

부모님의 영면은 작은 내게 큰 산이 되어 나를 슬프게 했지만 나의 상실의 시기에 엄청나게 큰 사랑을 나는 만난다. 부모님과 함께했던 생의 일부분의 느낌과 감정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나를 모자라지 않게 채우게 하며, 아쉽고 서운했던 기억도 어떤 자리를 찾아가 자리를 잡고 가끔 내게로 와 제 모습을 보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내게 작은 연민으로 다가와 고은 노을빛을 가득 담은 눈망울을 선물한다.

나의 세계는 가느다란 일상의 이미지에서부터 신과 사람, 사람과 자연, 아버지와 아들, 아내와 남편,.......이런 수없이 많은 관계성 위에 사랑, 행복, 기쁨, 슬픔, 고독, 평안, 거짓, 미움 등의 여러 상대적 상위가치가 관계진행 중에 고이지 않는 샘물처럼 뿜어 나오게 되는데 이 때 나는 가족의 이야기를(나와 내 가족의 이야기이지만) 우리들의 이야기로 확장하여 평범하게 바라보며 인생의 한 순간 한 순간을 축복하며 함께 걷기를 제안하는 마음으로 그림그리기에 임한다.

그림 속, 어떤 싱그러운 봄날 아니 요즘처럼 낙엽 떨어지는 가을날에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동물원으로 나들이를 가는 부부의 모습은 그렇게 특별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과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조금의 여유와 쉼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인생의 한 때를 최선의 방법으로 그려 가는 이런 풍경 속에서 삶은 이처럼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함께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다.

“당신이 먼 길을 걷다가 지쳐 힘들다며 어려워하고 지쳐있으면 나는 당신에게 커다란 아름드리 나무를 보여주며 쉬어 가라고 손짓하겠습니다. 그 때 당신이 그 나무 그늘아래서 잠시 쉬며 자신을 돌아보며 무언가를 느끼고 깨우치는 것이 있다면 나는 더 이상 당신을 미련한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겠습니다.”

아! 삶은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네가 바라보는 대상 속에 사랑하고 아껴야 할 너의 인생이 있다고".

나는 인생을 기록하듯 그려간다.

“낙엽지는 가을 지나,
눈내리는 겨울 너머
꽃피는 봄날을 기다립니다.
여름의 따가운 태양과 삶을 노래합니다.
구름을 잡는 시화와 어둠의 무거운 그늘 저편에 사는
작은 여우의 굴너머로 나의 돌아갈 집이 그윽하게 바라보인다."
(김덕기의 시 “오는 계절” 中에서)

나는 인생을 여행할 때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가족과 그 안의 사랑이라 생각한다. 그들 중 누군가 하늘나라로 먼저 이사 갈 때면 그 빈자리가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러나 그 빈자리에는 그가 남긴 여러 교훈과 좋은 감정, 추억, 사랑, 기쁨으로 함께 했던 즐거운 기억들이 고스란히 남게 된다. 인생 속에서 가치가 있는 것들이란 대개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 같아서 언제나 우리가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우리로 하여금 강건하게 하고, 도전들을 이기게 하는 용기를 필요에 따라서 공급한다. 그런 소중한 가치가 나의 그림에 담겨지길 꿈꾼다. 대체로 그것들은 다양한 색상을 내며 일정한 시간의 거리를 두고 독특한 맛과 향을 지니게 되는데 여전히 드러나는 듯하다가 사라지는 속성을 갖고 있고, 강하게 화면 여기 저기서 어떤 발설을 하고는 조만조만한 것들이 화면 속으로 사라지며 영향을 준다.

“화려한 꽃이 만개하다가도 시절과 함께 시들어 버리면
그 화사한 기운은 어디론가 형상과 함께 사라지고 만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베드로전서 1장 24절 )

“저에게 있어 그림은 인생을 노래하게 합니다.
저에게 있어 인생은 그림의 대상이 되어 갑니다."

"세월이 지나는 강변에서
우리들은 다시 만나 모래성을 쌓았지
바람은 모래성의 형태를 부수며 거기를 지나 갔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아음을 얻게 하소서" (시90:12)

김덕기
2002.8.27.
2003.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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