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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Flâneur)의 시선_기억의 풍경 / 박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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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tudio 작성일21-04-10 14:14 조회4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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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Flâneur)의 시선_기억의 풍경




박 남 희(미술비평)




밝게 비추는 태양 아래 선명한 색채들이 공원, 해변, 들녘으로 직조되는 김덕기의 화면은 현실의 공간이자 기억의 풍경이다. 나무, 사람, 건축물, 자동차, 동물들까지 삶의 세계에서 만나는 일상 그대로의 장면이 특유의 온기 어린 형과 색으로 채워진다. 평화로운 어느 한순간이 표상되는 그의 세계에 대해 ‘행복서사경(幸福徐事景)’이라 칭한 바 있다. 이는 풍경 속에 하나가 되어있는 사람들 때문이다. 얼핏 보면 색채들의 향연인 풍경으로만 보일 수도 있으나 거의 모든 장면에서 인물이 등장하여 서사를 만들고 시선을 멈추게 한다. 그림에 사람이 있는 풍경이 놀랍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물은 화면 전체의 정서적 맥락을 만들어내는 점경(點景) 크기의 형상들이라는 점이 독특하다. 화려한 색채로 가득하지만 과장되거나 부담스럽지 않게 녹아드는 인물의 특징은 평면의 고유한 ‘경영위치(經營位置)’가 있다는 얘기다. 즉 캔버스와 아크릴이 주재료라 하더라도 평면의 구성과 정서는 한국화의 미적 아비투스(habitus)와 통찰에 기반한다. 작가로서 체화한 한국화 전통의 재료와 방법은 자연스럽게 표현의 확장 아래 파스텔, 유채, 아크릴 등의 재료로 이어졌다. 이러한 과정이 그에게는 동양적 세계관과 서양화 표현의 중첩된 화면이라는 독자성에 다다르게 한 것이다.




최근 들어 그의 작업에는 플로리다 키웨스트, 루체른, 볼프강 호수, 생 폴 드방스 그리고 여주 등 다양한 장소들이 나타난다. 지난해부터 팬데믹으로 자유롭게 다른 지역을 여행했던 시간이 그리워지는 시기, 그의 화면은 여행지에서 경험했던 순간을 환기시키며 일상의 회복을 더욱 간절히 소망하게 한다. 여행지는 누구에게나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여정이 맞물리며 올곧이 다른 경험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새로움과 생성의 처소이다. 더욱이 누군가와 함께 했던 곳이라면, 그들은 공감의 영토를 갖게 되는 것이리라. 이번 소울아트스페이스 전시의 작업들은 몇 년 전 아들과의 여행지가 대상이 되었다. 가족과의 여행은 익숙함과 새로움이 교차적으로 일어나며, 공감과 차이를 수없이 오가는 여정이다. 함께 했던 시간이 화면에 옮겨지면서 작가는 작업의 두 축인 현실공간의 ‘묘사’와 기억 또는 상상의 ‘라인드로잉’의 교차를 넘어 합치에 이르게 하고 있다. 하나의 화면 속에 현실과 기억의 양가적 공간이 결합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화면의 장소는 가족과 함께 했던 현실의 여행지이자, 현실의 공간을 관찰하며 그 속에 다른 기억을 떠올리는 사색지(思索地)인 것이다.




작가의 작업은 현실 속 장면이자 동화를 떠올릴 만큼 친화적인 대상들이 함께 한다. 가족들은 실존적 인물이자, 여전히 기억 공간에 또아리를 튼 정서적 존재이다. 여행지이자 사색지로서 화면 속 장소는 그가 얼만큼 삶에 집중하고 있는지를 확인시킨다. 그는 자신 삶의 주체이지만, 19세기 도시를 거닐며 당대를 호흡했던 산책자(flâneur)처럼 물리적 공간과 의식의 세계를 쉼 없이 오가며 작가로서, 관찰자로서, 가족으로서 동시대적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작가에게 발터 벤야민이 사용했던 ‘산책가’라는 별칭을 붙이게 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첫째, 실제로 거닐고 사색할 수 있는 심리적 여유와 동시대적 이슈와의 거리 두기가 전제되어 있다는 점에서이다. 그는 보이는 세계 전부를 시각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잔상으로 남는 혹은 기억으로 전이되는 장면들을 추출한다. 아프거나 어두운 구석이 없다. 그의 산책은 밝음과 유쾌함의 연속이다. 삶에서 오는 절망이나 무게가 사라진 유토피아적 장소성은 삶의 산책자로서의 욕망이 녹아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산책을 통해 스스로를 정화하며, 아픔 대신 위로와, 격려와, 사랑을, 평화를 소망하며, 풍경 속을 거닐고 있는 것이다. 둘째, 산책자는 걸으면서 감각하고 눈으로 호흡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작가가 상상 속의 공간을 그리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물리적 공간에의 탐색의 시간이 전제된다. 그가 그리는 모든 장소는 작가의 호흡을 거치고 관찰의 시간이 투영된 대상지다. 작가의 작업은 색채의 충만함 또는 선명함으로 사실적이라기보다 표현적이거나 초현실적으로 인지되기도 한다. 그에게 그런 독해나 느낌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누구보다 사실적이라고 했던 것은 무엇보다 ‘관찰자’의 눈으로 감각의 순간을 붙잡으려 했던 것과 같이, 작가의 시선은 늘 현실 속 세계와 사람에 대한 응시(gaze)를 통해 또 다른 ‘밝은 창밖’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색채 속에 빨려 들어가듯 그의 화면을 지긋이 바라보면, 산책자의 시선이 전해진다. 그는 천천히 음미하며 마주하는 세계와 눈 맞춤을 지속하고, 기억과의 접선도 이어가며 걷고, 바람과 햇빛 속에 머물곤 한다. 그의 눈 감각은 드넓거나 표정이 많은 건축물과 도로, 좁게 난 오솔길 사이사이 점경으로 묘사되는 작은 인물들의 표정이나 제스처까지도 예리하게 포착하고 이를 재현에 이르게 하는 ‘산책자의 시선(flâneur's gaze)’, 그것이다.




나무, 꽃, 새, 강아지, 사람, 바닷가, 요트, 파라솔, 자동차, 상점 등 일상의 풍경은 진경 속 정동(affection)의 지향에 의해 환하고 경쾌하다. 화면을 구성하는 사실적인 관찰의 동선과 고원, 평원, 심원의 산책자 여정의 시선이 종합해내는 시적 풍경은 화면 구성이나, 색점들의 반복적이고 집적된 구축으로 견고하다. 이번에 소개되는 <니스 해변-팜트리가 보이는 풍경>(2021)에서 왼쪽 전경의 팜트리를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둥글게 반원을 그리듯 등장하는 해변은 그의 종합적인 시점이 보다 잘 드러난 사례이다. 전경에서 후경으로 가는 동안 평원에서 고원으로 이어지는 시점이 자연스러우면서도 극적인 생동감을 만드는데, 어느 작품보다 점경의 인물들로 빼곡하여 이목을 집중시킨다. 푸른 팜트리 나무와 바다 그리고 수평선 너머 하늘로 이어지는 청색조의 청량함과, 해변 위의 다채로운 인물들은 분홍빛 살갗으로 생기발랄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루체른 호수의 여름-필라투스산이 보이는 풍경>(2020)이 호수에서 산 그리고 하늘로 이어지는 푸른빛의 전면에서 후면으로 바로 이어지는 시선이라면, <니스 해변-팜트리가 보이는 풍경>은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휘감는 시선으로 이어지게 하여 다른 공간의 전략을 보여준다. 물론 <루체른 호수의 여름-필라투스산이 보이는 풍경>에서도 호수에 떠 있는 배들로부터 나무 아래 자리를 차지한 인물들과 더 위쪽 길 위의 사람들까지 화면의 서사를 잇고 있는 것은 동일하다. 그의 화면은 공통적으로 풍경의 장면과 인물들이 하나의 결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곤 한다.




그런가 하면, 이번 전시에서 처음 선보이는 독특한 또 하나의 시도는 <여주-황금물결>(2020) 연작에서이다. 보다 단순한 색채와 표현으로 색면추상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공간과 시선의 간결하고도 구축적인 풍경의 결정적 장면으로 꼽을 수 있다. 화면의 위쪽 사분의 일 지점에 붉은 하늘과 붉은 산의 겹침은 수묵화에서 드러나는 산수의 산의 형상이 색으로 농담을 조정하는 것으로 보이며, 나머지 사분의 삼이 모두 황금빛의 들녘이다. 붉은 색과 노란색의 경계는 가로수를 떠올리게 하는 나무들과 집들이 수평선을 그리며 있고, 황금 들녘엔 경운기와 논길을 따라 몇몇 인물들 그리고 허수아비를 빼면 길로 만들어진 윤곽선이 전부다. 그의 작업 어떤 것보다 간결하지만 강약이 분명한 열정과 침착이 빛난다. 분명 이 작품은 어떤 변화를 향한 움직임의 단서일 수도 있다. 한국화의 산수풍경이 실경과 관념의 오묘한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그의 작업은 서양 기원의 질료로 여백이 색채로 드리워진 생기 넘치는 산수에 도달해있다. 부감 투시 또는 종합적 구성 내 인물과 자연은 언제나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유연한 운필, 생기 넘치는 색채, 구축적이고 견고한 화면 구성은 발색이 곧 발화하는 감각적 전언이라 하겠다.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 1908~1961)가 말하는 것처럼, 작가에게 “감각의 주체는 성질에 주목하는 사고하는 자도 아니고, 감각에 의해 영향을 받거나 변화되는 불활성 환경도 아니다. 그 주체는 어떤 존재의 환경에서 같이 탄생하는 또는 그와 종합해서 동시에 일어나는 힘이다.” 즉 ‘산책자의 시선’이라 명명한 감각의 주체로서 작가는 그가 걸었던 장소에서 기원하고 그의 기억과 용융되어 발현하는 힘에 주목한 것이다. 우리는 작가의 화면에서 만나는 감각적인 것으로부터 운동적, 생명적 의미를 발견하며, 어떤 장소로부터 세계 내 존재의 친밀한 실존을 확인받곤 한다.










A Flâneur’s Gaze_Poetic Scenery of Memory

Namhee Park(Art Criticism)

 

Under the brightly shining sun, vivid colors of the park, beach, and field interweave throughout Kim Dukki’s canvas, creating a landscape that blurs reality and memory. Scenes of the everyday are filled with trees, people, buildings, cars, and animals―each with a distinct sense of warmness to its shape and color. Eternalizing fleeting moments of peace, Kim’s world has been described as “the landscape of happy stories.” Though at first glance, bright colors seem to dominate the landscape, upon closer examination, one can notice the small figures that are placed throughout the landscape as agents of these happy stories. What distinguishes Kim’s landscape paintings is not simply in the decision to include figures in a scenery, rather it is in the ability of these small figures to convey the overarching emotional tone of the work. Even in brightly colored outfits, the figures’ considered placement within the composition complements their surroundings. The visual hierarchy of Kim’s landscapes corroborates his compositional and aesthetic sensibility founded upon the aesthetic habitus of Korean traditional paintings. Kim skillfully integrates Korean traditional painting techniques with his use of Western art media, such as pastels, oils, and acrylics. In this process, he succeeds in simultaneously displaying an Eastern-oriented worldview and a more Westernized painting expression.

 

Key West, Luzerne, Wolfgangsee, Saint Paul de Vence, and Yeoju are just some of the various places depicted in Kim’s recent works. His paintings invoke a nostalgia for the times before COVID-19―those blissful days of traveling around freely. Traveling brings forth a sense of newness by merging a unique experience of time and space; and when traveling with a companion, the experience further incorporates a sense of empathetic sharing. The works on display at Soul Art Space are based on the travels of the artist with his son. Traveling with family stands at the peculiar boundary between familiarity and unfamiliarity and fluctuates between agreements and disagreements. These shared moments are transcribed by the artist as a combination of ‘portraitures’ of real places and as ‘line-drawings’ of memories and imaginations. The image then is no longer strictly a visual representation of the travel destination itself but an ambiguous embodiment of both reality and fantasy. Kim’s intricate landscapes manifest the physical location as well as the contemplative space upon which the artist’s impression of the location from the past is projected.

 

Kim’s landscapes are often accompanied by amicable characters, which is evocative of a scene from a fairy tale. The figures are based on real people but are also sentimental beings that are rooted in the field of memories. Kim’s landscapes, which represent places of travel and contemplation, are a testament to his attention to life. Though Kim is the protagonist of his life, much like the flâneur wandering the streets in the 19th century, Kim is also an artist, an observer, and a family member who restlessly traverses across the physical and metaphysical realms of his contemporary times. There are two reasons why I am calling Kim ‘the flâneur’―as used by Walter Benjamin. First, it is on the premise that the artist sustains a sense of psychological liberty that allows him to roam around, lost in his thoughts. This is similarly reflected in his works which appear to be distanced from contemporary social issues. Kim’s interest does not merely lie in observing the real world but extends further to visualizing the remnants of memories―the afterimages. No darkness, only bountiful brightness and joy pave his path. Such a utopic environment, where life’s weight appears to have dissipated, may just be a projection of what the flâneur wishes to see in the journey of life. The flâneur is able to re-align himself during his walks, prioritizing consolation, encouragement, love, and peace over pain. Second, it is on the premise that the flâneur is highly attuned to his surroundings, acutely perceiving with all five senses. Each space pictured in the paintings, fictional or not, is always developed by the artist from hours of observation and contemplation of the physical realm. The clarity and vibrancy of colors in his works are at times interpreted as expressionist or surrealist, rather than realist. Designating his oeuvre under one definitive category is of little importance for the artist. Much like how impressionist painters believed they were able to emulate the closest image to reality, striving to capture the instant moment of sensation through the eyes of ‘the observer,’ Kim gazes at society and people in real life to reveal yet another ‘optimistic reality beyond the frame.’ He attentively observes the world in front of him, immersing in his memories that abound with wind and sunshine. Mesmerized by the vibrant outburst of colors, one can spend an extended period looking at his paintings and begin to understand the gaze of the flâneur. It is the acute ‘gaze of the flâneur’ that is able to translate even the most minute expressions and gestures of the figures within the vast sprawling of buildings, roads, and winding trails on the canvas.




The trees, flowers, birds, dogs, people, beaches, yachts, parasols, cars, and shops radiate with affection, permeating into the poetic landscape of the everyday. Layers of colored dots are carefully arranged on the landscape, defining a realistic depth of field while also alluding to the perspective of the flâneur who is wandering the landscape. In his new work, <Nice Beach-Scenery with Palm Trees>, Kim clearly demonstrates an adept sense of perspective as he shifts the center of the image to the palm tree on the left-side and extends the curvature of the beach in a semi-circle to the right. The transition from the beach in the foreground to the plateau in the background is organic yet accentuated with dazzling colors. One can also immediately notice the abundant number of people present in this landscape compared to his other paintings. The painting teems of green palm trees, the glistening blues of the ocean horizon that blend into the sky, and the sun-kissed skin of the beach-goers. If <Nice Beach-Scenery of Palm Trees> applies a dramatic perspectival shift from the left to the right, <Summer at Lake Luzerne-Scenery of Mt. Pilatus> instead employs a linear gaze that directly continues from the lake to the mountain and the sky. Despite this contrasting compositional approach, <Summer at Lake Luzerne-Scenery of Mt. Pilatus> does not fail to generate a narrative that interlaces the boats afloat on the lake, the figures relaxing under the trees, and the people walking on the roads above. Again, Kim unfailingly brings the landscape and the figures together in one sweeping stroke.




Another unique work in this exhibition is undoubtedly <Yeoju-Golden Waves>, a series being presented to the public for the first time. Comparable to a color-field painting, the landscape is ever-expressive with its simplified color palette. The overlapping of the reddened sky and mountain range in the upper portion of the canvas is like a traditional ink-wash painting that defines a mountain range using only blocks of color. The rest of the canvas is a field of golden light. Colonnade trees and houses delineate the edge between the red and the yellow. A tractor, a scarecrow, and a few people are scattered throughout the golden field―without them, a curved road is all that exists. The work is succinct, yet the artist’s passion and patience are apparent in the rhythmic oscillation between the strong and the soft. This painting may implicate the beginning of a new stylistic trajectory for the artist. Kim’s landscapes resonate with the harmony of the visual and the spiritual in Korean traditional landscape paintings. It also achieves great vivacity by blocking out negatives spaces using vibrant colors offered by Western paint media. Whether from an aerial point of view or a composite of multiple perspectives, people and nature are always gathered to generate a unified landscape. Versatile brush strokes, vigorous colors, and a densely layered composition seem to signal the beginning of a new aesthetic development. For the artist, as Maurice Merleau-Ponty writes, “[the] subject of sensation is neither a thinker who takes note of a quality, nor an inert setting which is affected or changed by it, it is a power which is born into, and simultaneously with, a certain existential environment, or is synchronized with it.” In other words, as ‘the gaze of the flâneur’―or, the subject of sensation―the artist focuses on the force that arises from the inextricable coalescence of his memories and his movement. As viewers, we find both a kinetic and vital significance from that which is of sensation in his works and can recognize our own intimate existence within the world through our presence in a particular enviro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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