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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을 두다 / 성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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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tudio 작성일16-09-17 15:50 조회1,0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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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을 두다

 성윤진 [LOTTE Gallery]

며칠 전 꽃바구니를 들고 병문안을 가는 길이었다.
신경 써서 만든 꽃바구니인지라, 빼곡히 꽂혀있는 꽃이 꽤 무거웠다. 꽃이 상할까 지하철을 타고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앞에 한 새댁이 잠들어버린 네 살 남짓한 딸내미를 억척스럽게 안고 서 있었다. 어쩌면 저렇게 번쩍 안고 서있을까 생각하는 동안, 종점에 가까워지면서 자리가 듬성듬성 나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우리는 한 사람은 꽃을, 또 한 사람은 잠든 아이를 보듬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나는 참 아름다운 꽃바구니를 가지고 있었다. 지하철을 오르내리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수많은 눈길을 받은 꽃이다. 그런데, 늦은 저녁, 한숨을 내쉬며 지친 팔로 딸을 추스르는 어머니가 쥔 것은, 너무 진부하기는 하지만, 꽃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우리는 똑같이 꽃을 들었네요.'
내 쭉 째진 눈으로 지친 그이가 알아차렸을 리 만무한 다정한 눈빛을 건넸다.

젊은 시절은 신파에 감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점점 나이가 들수록 소위 달달한 미학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인생이 녹록치 않음과, 얽히고 설킨 관계에서 오는 위로가 일종의 마약같은 안위를 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 김덕기는 달콤한 그림을 그린다. 최근 작가는 한층 밝고 화려한 원색으로 한없이 투명하고 밝은 가족의 이상적인 풍경을 그렸다. 그의 그림에는 고뇌와 아픔, 슬픔이 없듯이 그림자 또한 없으며, 인형의 집처럼 안팎의 구분이 없다. 투명하게 노출된 집안에는 사랑으로 넘치는 가족들이 가득하다. 마치 사랑의 부적처럼, 다정한 부부와 어린 자녀들, 그들이 함께 사는 정원 딸린 그림 같은 집의 사랑 넘치는 풍경은 그의 그림을 보는 우리들에게까지 그들의 사랑을 전염시키고야 만다. 이렇듯 ‘행복한 가족의 일상’이라는 일관된 주제는 어떻게 등장하게 된 것일까?

6.25때 남쪽으로 내려오신 그의 아버지는 67세란 늦은 나이에 막둥이로 김작가를 보셨고 유난한 사랑을 받고 자랐다. 그러던 것도 잠시, 중2때 어머니가 먼저, 그리고는 작가가 서울예고를 다닐 때 아버지가 영면에 드시고 만다. 아버지가 세상에 없다는 것만으로도 작가는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몰랐다고 한다. 이후 허름했지만 인심 좋은 하숙방과 때로는 고시원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게 된다. 다른 친구들은 실기레슨으로 바쁠 때 그는 홀로 캔버스를 들고 야외로 나가기 일쑤였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직 어렸고 힘들었던 그 때가 작가로서의 소양이 자신도 모르게 쌓아진 시기였을 것으로 회상한다. 우선 혼자 많은 시간을 보내는 연습은 충분하고도 남았으며, 나이답지 않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관심이 가게 된 것이다.

그는 서울대학교 동양화과 시절을 자칭 이단아였다고 말한다. 그의 작업은 학교 분위기였던 먹 위주의 간결한 작품과는 거리가 멀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 서클 활동에 정신을 쏟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임을 통해 사람 만나는 것이 좋았고 본인 스스로를 인정하게 되면서, 마음의 안정과 함께 가난한 화가를 아낀 그의 부인도 만날 수 있었다. 첫 개인전을 즈음해서 그는 결혼을 했고,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아내의 아르바이트 비와 새벽 신문 배달비가 그들 생활비의 전부였다. 그 후 서울 보성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되면서, 그들의 사랑과 인생 이야기를 그림에 등장시키게 되고 삶을 아끼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남들은 누구와도 똑같은 결혼 생활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그에겐 기적이었다. 작가노트에 있는 글 제목 중엔 <누가 이 천사를 내게 보냈을까?>란 글도 있듯, 그의 아내는 그에게 삶의 이유이고 작업의 주제가 되었던 것이다.

터널이 길고 어두울수록 그 끝에서 만나는 빛은 더 찬란하다. 현실이 고달플수록 퇴근길에 맞아주는 가족의 고마움과 그 안의 행복이 더욱 따스한 것도 마찬가지다. 알록달록 꽃들이 핀 정원 화단에 함께 물을 주는 부부, 자전거를 탄 아이들, 뛰노는 강아지와 지저귀는 새들, 창문을 활짝 열어젖힌 아담한 집과 이를 둘러싼 나무들…. 가족에 대한 작가의 절절한 사랑을 담아 그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행복한 풍경이 전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번 개인전에서 신작들은 더 풍부해진 환상적인 색감을 선보인다. 햇살과 온기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점묘(點描)도 깊이를 더했다. 작가가 고향 여주 당우리의 새 작업실로 옮긴 뒤 거미줄에 걸린 영롱한 이슬들에서 발견한 삶의 희열과도 같은 '점'이다. 또한 동양화 출신답게 군더더기 없는 드로잉은 집과 해님, 아롱이 등 작가가 즐겨쓰는 소재를 보다 단순하면서도 명쾌하게 표현해 냈다. 뿐만 아니라 화려한 근작과는 달리 색 없이 퇴묵기법으로 수묵담채를 그리던 초기작과 작가의 작품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소재와 기법의 무한한 실험과 변용이 진행 중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천진난만한 아이의 붓질처럼 그늘없이 마냥 밝은 그림을 그리는 김덕기 작가. 하루종일 행복할 수는 없지만 행복한 그 순간을 화폭에 옮겨두는 순간, 그림은 위안과 힘이 될 것을 믿는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을 전달하는 화가’, 김덕기의 힘이며 소망이다.

2011, Beyond the Winter's Cold, LOTTE Gallery, Seoul



행복한 그리움

 김덕기



 살면서
 잠시
 외로움이 물어온다면
 행복한 그리움에 기대어
 하늘을 바라보세요
 뜻 밖에
 파란 하늘 하나가
 반길겁니다

 지쳐서
 쓰러질 때
 어깨에
 큰 무게감이 누를 때
 행복한 그리움에 물어보세요
 빙그레 미소짓는
 작은 아이 하나가
 이리오라
 손짓하지요

 큰 다리를 지나
 작은 다리까지 다다른
 백발의 아버지를 만질 수 있습니다
 마고자 가득
 한약방 냄새가
 찬 공기와 함께
 내 볼을 스칩니다

 모두 다 잠든 밤이면
 홀로 일어나
 눈물 흘리며
 그리움과 고독한 대화를
 나누시는 아버지

 넓은 안방 안엔
 언제나
 늙은 아버지와 어린아이 하나
 그 분은 무엇에 기대어
 생[生]을 사셨을까

 그리움이 행복이라고
 말씀하시며
 걸어가셨던
 나의 행복한 그리움
 나의 아버지

 잘 다녀왔냐던
 아버지

 살면서
 잠시
 외로움이 물어온다면
 행복한 그리움에 기대어
 하늘을 바라보세요
 할미새가
 다시 온 봄을
 노래하며 날아가는 것을
 볼 겁니다

 자
 일어나세요
 으 차


No.: 15, Read: 96, Vote: 0, 2012/03/28 13: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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