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마을로 가는 길 / 전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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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tudio 작성일16-09-17 15:52 조회1,16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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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포의 봄, 2013, Acrylic on canvas, 112.1X162.2cm
[Private Collection]
행복한 마을로 가는 길
모든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산다고 누군가 쓸쓸하게 말하였는데 이는 모두들 행복을 추구하지만 정작 그것을 찾아낸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말이다. 관람객들의 즐거운 반응을 갤러리 현장에서 지켜본 한 사람으로 행복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내고 환하게 밝혀주는 것이 김덕기 그림의 가장 큰 매력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근래에 쏟아져 나오는 미술 작품들을 살펴보면 이보다 훨씬 거대한 스케일과 기이한 색채, 의미심장하고 난해한 메시지, 첨단의 미디어로 번쩍이며 무장하고 있는 그림도 많다. 그에 비해 김덕기의 그림은 너무나 꾸밈없는 표현들로 이루어진 쉽고 편안한 그림인 것이다. 그 소박함 속에 숨겨져 있는 행복의 비밀을 추적해본다.
현재는 화사한 색채의 물감을 많이 사용하지만 본래 동양화를 전공하였던 작가는 세월이 느껴지는 브라운 계열의 장지나 천 위에 담백하고 검은 먹으로 선맛이 두드러지는 드로잉을 했었다. 당시 그려진 것들은 현재까지 일관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소재들로 세모지붕과 커다란 창문을 활짝 열어놓은 집과 잘 가꾸어진 나무들, 그 아래 담소 나누고 있는 사이좋은 부부, 그네를 타거나 부모와 함께 뛰어놀고 있는 아이와 귀여운 강아지, 지붕 위에서 지저귀는 새와 연못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분수 옆 촉촉한 땅위로 피어나는 갖가지 꽃과 이들을 조용히 비추고 있는 해 등이다.
소재 속에서 비추어지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행복한 일상의 기록은 작가가 삶 전체에 대해 가지는 깊은 신뢰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긍정과 감사의 잔잔한 결과물이다. 가족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가슴시리고 다 표현할 수 없는 애틋한 감정, 좀 더 잘해주지 못하였던 지난날에 대한 후회같은 것들이 그림을 바라보는 과정을 통해 치유되고 소망과 기대를 품은 다짐으로 이어진다. 그에게만 특별히 행복이 거저 주어졌던 것은 아닐 것이다. 작가로서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우주만한 문제를 껴안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고단한 현실 가운데 끊임없는 회유를 극복하고 긍정적 시각을 구축해나가며 우직한 실천으로 꽃피워내기까지 외롭고 치열한 싸움을 치렀을 것이다.
그림 속 파란 스웨터를 입고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처럼 미소 지으며 갤러리를 방문하고 부산 일대 바닷가를 스케치북에 열심히 담아가던 작가의 모습이 떠오른다. 좋은 구도를 찾아 뛰어다니며(!) 카라멜색 가죽 가방 속에서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누르기도 하고 그날 햇살과 바람에 반응하며 출렁이는 파도와 풍경들을 연필과 수채 물감으로 꼼꼼히 기록하였다.
스케치북 속에 담겨진 드로잉들이 여주 작업실에서 캔버스로 옮겨지는 모습을 그려본다. 대체로 2,30호에서 100호 정도 크기의 네모 캔버스를 선택한 작가는 먼저 전체 화면 위로 충만한 원색의 물감을 아낌없이 부어놓는다. 빨강, 노랑, 초록을 듬뿍 올려놓고 나면 스케치북의 드로잉들이 시들해 질만큼 새로운 형상들이 마음속으로 쑥쑥 떠오를 수 있지만 큰 덩어리부터 작은 덩어리로 계획된 것이 차분히 올라온다. 이렇게 중간과정까지 진행된 화면에는 단단한 색면이 주를 이룬다.
마침내 두근거리는 점들이 등장할 차례가 되면 작가는 더욱 몰입하여 한 점, 한 점, 파레트에서 붓으로, 붓에서 캔버스로 색조각들을 옮겨 나른다. 점 하나하나마다 붓질의 방향이나 눌러진 힘이 느껴지는 듯 각기 조금씩 다른 크기와 모양, 두께를 가지는데 바탕이나 주위의 색과의 관계에 있어서 특별한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저마다의 빛깔이 소리를 내지만 또 비슷한 색과 크기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는데 조금 나와서 바라보면 원색의 점들이 온화하게 중첩되며 우아한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이처럼 색점이 두드러지게 사용된 것은 작가가 유채나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면서다. 조르주 쇠라의 미세하게 분쇄되어 있는 점들이 일반적으로 과학적이고 차갑게 느껴지며 야요이 쿠사마의 창백한 점들이 강박적이고 병적인 인상을 주는 것과 비교할 때 김덕기의 점묘가 가지는 친근하고 생동감 있는 한국적인 이미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노란 바다가 보이는 풍경>에서 해안의 절벽으로 구불구불 내려오는 선들이나, <청사포의 봄>에서 화면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벚나무 가지 표현, <등대가 보이는 풍경>의 구름 등 두터운 물감으로 일부러 남겨놓은 붓자국도 이번 전시에서 두드러진다. 다양한 형태의 집들이 모여 이룬 마을과 그 주위를 돌아가는 노란 길, 해안가 절벽과 묶여 있는 배, 다양한 모양의 등대, 수평선 위의 동글동글한 구름 등도 바다와 함께 새롭게 등장한 소재들이다. 바다의 표현을 위해서는 바탕의 색면이 많이 드러나게 여백을 두었고 가로로 열 개에서 스무 개 정도 점을 반복해서 찍었는데 이는 파도위로 반짝이는 햇살, 물결이 움직이는 방향, 평안한 수평선을 암시하며 여백을 강조한 하늘, 밀도 높은 육지 표현과 구분되어 화면에 또 다른 안정감과 변화를 만들어주었다.
물감이 얹어진 순서로 보아 인물이 가장 마지막에 그려진 것을 알 수 있는데 화면에 크게 자리 잡은 산과 바다와 같은 자연물에 비해서 아주 작게 그려진 사람의 비율이 과거의 인물 산수화를 떠올리게 하지만 막상 그가 화면에서 자리 잡은 구도나 역할에서는 반전을 찾을 수 있다. 이 그림 속 인간은 자연에 칩거하여 순응하고 살아가는 고고한 선비의 이미지가 아닌 화면의 주인공으로 자연 속에서 행복을 마음껏 누리고 그것을 다스리며 경작하는 적극적인 모습으로 그려진 것이다. 좀 더 다양한 옷차림이나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보다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남자와 여자, 부모와 자녀로서의 위치와 역할, 혹은 자연과의 관계에서 인간이 누리는 기쁨과 사명을 감당하는 상징적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했다.
아름다운 땅위에는 수고하지 않아도 열매 맺는 나무들과 보기에 좋은 꽃들이 만개하고 온유한 산등성이 주위를 고요하게 두르는 바다도 잔잔한 파도를 일으킬 뿐 뭍을 침범하지 않는다. 종류대로 만들어진 새와 물고기는 사람과 함께 자연을 누리고 생육하고 번성한다. 한 번도 보지 못하였던 태초의 천지를 재현하고자 하는 듯 한 야심찬 시도 속에 현재하는 우리 가정과 일상을 그려내며 어그러진 시간들은 회복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간절한 소망이 전해온다. 김덕기의 그림에서 행복은 여기저기 조금씩 숨겨져 있는 비밀스러운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질서와 사랑의 관계성 속에서 누구에게나 덤으로 주어지는 넘치는 축복이었다.
전은미 (소울아트스페이스 큐레이터)
No.: 19, Read: 97, Vote: 0, 2013/06/21 11:10:38
[Private Collection]
행복한 마을로 가는 길
모든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산다고 누군가 쓸쓸하게 말하였는데 이는 모두들 행복을 추구하지만 정작 그것을 찾아낸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말이다. 관람객들의 즐거운 반응을 갤러리 현장에서 지켜본 한 사람으로 행복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내고 환하게 밝혀주는 것이 김덕기 그림의 가장 큰 매력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근래에 쏟아져 나오는 미술 작품들을 살펴보면 이보다 훨씬 거대한 스케일과 기이한 색채, 의미심장하고 난해한 메시지, 첨단의 미디어로 번쩍이며 무장하고 있는 그림도 많다. 그에 비해 김덕기의 그림은 너무나 꾸밈없는 표현들로 이루어진 쉽고 편안한 그림인 것이다. 그 소박함 속에 숨겨져 있는 행복의 비밀을 추적해본다.
현재는 화사한 색채의 물감을 많이 사용하지만 본래 동양화를 전공하였던 작가는 세월이 느껴지는 브라운 계열의 장지나 천 위에 담백하고 검은 먹으로 선맛이 두드러지는 드로잉을 했었다. 당시 그려진 것들은 현재까지 일관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소재들로 세모지붕과 커다란 창문을 활짝 열어놓은 집과 잘 가꾸어진 나무들, 그 아래 담소 나누고 있는 사이좋은 부부, 그네를 타거나 부모와 함께 뛰어놀고 있는 아이와 귀여운 강아지, 지붕 위에서 지저귀는 새와 연못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분수 옆 촉촉한 땅위로 피어나는 갖가지 꽃과 이들을 조용히 비추고 있는 해 등이다.
소재 속에서 비추어지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행복한 일상의 기록은 작가가 삶 전체에 대해 가지는 깊은 신뢰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긍정과 감사의 잔잔한 결과물이다. 가족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가슴시리고 다 표현할 수 없는 애틋한 감정, 좀 더 잘해주지 못하였던 지난날에 대한 후회같은 것들이 그림을 바라보는 과정을 통해 치유되고 소망과 기대를 품은 다짐으로 이어진다. 그에게만 특별히 행복이 거저 주어졌던 것은 아닐 것이다. 작가로서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우주만한 문제를 껴안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고단한 현실 가운데 끊임없는 회유를 극복하고 긍정적 시각을 구축해나가며 우직한 실천으로 꽃피워내기까지 외롭고 치열한 싸움을 치렀을 것이다.
그림 속 파란 스웨터를 입고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처럼 미소 지으며 갤러리를 방문하고 부산 일대 바닷가를 스케치북에 열심히 담아가던 작가의 모습이 떠오른다. 좋은 구도를 찾아 뛰어다니며(!) 카라멜색 가죽 가방 속에서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누르기도 하고 그날 햇살과 바람에 반응하며 출렁이는 파도와 풍경들을 연필과 수채 물감으로 꼼꼼히 기록하였다.
스케치북 속에 담겨진 드로잉들이 여주 작업실에서 캔버스로 옮겨지는 모습을 그려본다. 대체로 2,30호에서 100호 정도 크기의 네모 캔버스를 선택한 작가는 먼저 전체 화면 위로 충만한 원색의 물감을 아낌없이 부어놓는다. 빨강, 노랑, 초록을 듬뿍 올려놓고 나면 스케치북의 드로잉들이 시들해 질만큼 새로운 형상들이 마음속으로 쑥쑥 떠오를 수 있지만 큰 덩어리부터 작은 덩어리로 계획된 것이 차분히 올라온다. 이렇게 중간과정까지 진행된 화면에는 단단한 색면이 주를 이룬다.
마침내 두근거리는 점들이 등장할 차례가 되면 작가는 더욱 몰입하여 한 점, 한 점, 파레트에서 붓으로, 붓에서 캔버스로 색조각들을 옮겨 나른다. 점 하나하나마다 붓질의 방향이나 눌러진 힘이 느껴지는 듯 각기 조금씩 다른 크기와 모양, 두께를 가지는데 바탕이나 주위의 색과의 관계에 있어서 특별한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저마다의 빛깔이 소리를 내지만 또 비슷한 색과 크기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는데 조금 나와서 바라보면 원색의 점들이 온화하게 중첩되며 우아한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이처럼 색점이 두드러지게 사용된 것은 작가가 유채나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면서다. 조르주 쇠라의 미세하게 분쇄되어 있는 점들이 일반적으로 과학적이고 차갑게 느껴지며 야요이 쿠사마의 창백한 점들이 강박적이고 병적인 인상을 주는 것과 비교할 때 김덕기의 점묘가 가지는 친근하고 생동감 있는 한국적인 이미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노란 바다가 보이는 풍경>에서 해안의 절벽으로 구불구불 내려오는 선들이나, <청사포의 봄>에서 화면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벚나무 가지 표현, <등대가 보이는 풍경>의 구름 등 두터운 물감으로 일부러 남겨놓은 붓자국도 이번 전시에서 두드러진다. 다양한 형태의 집들이 모여 이룬 마을과 그 주위를 돌아가는 노란 길, 해안가 절벽과 묶여 있는 배, 다양한 모양의 등대, 수평선 위의 동글동글한 구름 등도 바다와 함께 새롭게 등장한 소재들이다. 바다의 표현을 위해서는 바탕의 색면이 많이 드러나게 여백을 두었고 가로로 열 개에서 스무 개 정도 점을 반복해서 찍었는데 이는 파도위로 반짝이는 햇살, 물결이 움직이는 방향, 평안한 수평선을 암시하며 여백을 강조한 하늘, 밀도 높은 육지 표현과 구분되어 화면에 또 다른 안정감과 변화를 만들어주었다.
물감이 얹어진 순서로 보아 인물이 가장 마지막에 그려진 것을 알 수 있는데 화면에 크게 자리 잡은 산과 바다와 같은 자연물에 비해서 아주 작게 그려진 사람의 비율이 과거의 인물 산수화를 떠올리게 하지만 막상 그가 화면에서 자리 잡은 구도나 역할에서는 반전을 찾을 수 있다. 이 그림 속 인간은 자연에 칩거하여 순응하고 살아가는 고고한 선비의 이미지가 아닌 화면의 주인공으로 자연 속에서 행복을 마음껏 누리고 그것을 다스리며 경작하는 적극적인 모습으로 그려진 것이다. 좀 더 다양한 옷차림이나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보다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남자와 여자, 부모와 자녀로서의 위치와 역할, 혹은 자연과의 관계에서 인간이 누리는 기쁨과 사명을 감당하는 상징적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했다.
아름다운 땅위에는 수고하지 않아도 열매 맺는 나무들과 보기에 좋은 꽃들이 만개하고 온유한 산등성이 주위를 고요하게 두르는 바다도 잔잔한 파도를 일으킬 뿐 뭍을 침범하지 않는다. 종류대로 만들어진 새와 물고기는 사람과 함께 자연을 누리고 생육하고 번성한다. 한 번도 보지 못하였던 태초의 천지를 재현하고자 하는 듯 한 야심찬 시도 속에 현재하는 우리 가정과 일상을 그려내며 어그러진 시간들은 회복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간절한 소망이 전해온다. 김덕기의 그림에서 행복은 여기저기 조금씩 숨겨져 있는 비밀스러운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질서와 사랑의 관계성 속에서 누구에게나 덤으로 주어지는 넘치는 축복이었다.
전은미 (소울아트스페이스 큐레이터)
No.: 19, Read: 97, Vote: 0, 2013/06/21 11: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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