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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심경 心鏡과 마음의 형사 形寫가 직조하는 행복서사경 幸福敍事景 / 박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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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tudio 작성일20-04-28 02:00 조회7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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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기의 그림, 눈의 심경 心鏡과 마음의 형사 形寫가 직조하는 행복서사경 幸福敍事景
박 남 희 (미술비평)




마른 풀들이 햇볕을 받아 따스함을 품고 파란 하늘의 공기는 더할 수 없이 신선한 겨울, 여주 들녘에서 김덕기 작가를 만났다. 청명한 하늘과 호흡하는 경기도 여주는 2008년 작가가 작업에 몰두하고자 다시 찾은 이후 여전히 행복을 그려내는 곳이다. ‘행복한 그림’, ‘따뜻한 가족애’의 서정성으로 정평이 난 작가의 그림은 그가 나고 자란 이 자연으로부터 기인한 평안과 위로 그리고 생기를 품고 있다. 생기발랄한 색채와 동화같은 서사로 드러난 그의 예술 세계가 단지 꿈꾸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실제 삶의 세계와 결을 같이한다는 사실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가 보는 자연, 풍경, 사람은 작가만의 선과 색의 사유를 통해 환한 재현을 이루기 때문이다. 행복의 실재를 현실에서 발견하고 표상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행복서사경 幸福敍事景’이라 명명할 수 있는 그의 그림은 밝고 환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만의 ‘눈의 심경 心鏡’이자 ‘마음의 형사 形寫’ 그대로를 바라보는 이에게 고스란히 전이한다. 많은 이들이 그의 그림을 사랑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어렵지 않고, 위로가 되는 그림이지 않은가.

무엇보다 그의 그림은 한국화의 시각을 관통한 동시대 이상적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즉 (굳이 이런 경계를 전제하여 얘기하는 데 어색함이 있지만) 한국화와 서양화 양자의 표현 기법과 사유가 조화롭게 용융된 시각 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나무, 꽃, 새, 자동차, 자전거, 시소, 그네, 사람, 산수 등의 모티프들이 다채로운 행복예찬의 질료가 되어 기운생동 氣韻生動한 세계를 만든다. 다수의 그림에 등장하는 부감 투시 또는 종합적 구성은 전형적인 한국화의 시선으로, 그에 따른 인물과 자연의 그림은 언제나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묘사를 완성하는 필법 역시 한국적 운필을 느낄 수 있는데, 생기발랄한 유화 또는 아크릴 등 서구 기원의 재료와 만나 부드러움을 더한다. 때때로 색점의 반복적 패턴은 구축적이고 견고한 화면에 이르러 표현의 다양한 발화를 더욱 빛나게 이끌기도 한다.

이러한 그의 작업 세계의 특징은 마티스, 시냐크, 샤갈, 미로의 여러 성향과 장욱진, 이중섭, 김환기를 연상시키는 색채언어와 서정적 서사로 이어지는데, 행복이라는 큰 주제를 두 갈래의 표현 양상이 시종일관 교차적으로 드러내는 특징이 있다. 요약적으로 말하자면, 현실 공간의 ‘묘사’와 기억과 상상의 ‘라인드로잉’의 연속과 교차를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일각수의 꿈>이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가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분리되어 있음을 두 개의 축으로 하여 소설을 전개하듯이 말이다. 작가의 평면은 그렇게 양상이 다른 두 축을 지니는데, ‘묘사’의 축은 현실 혹은 실재의 공간으로, ‘라인드로잉’의 축은 기억 혹은 가상의 공간으로 볼 수 있다. 조형적으로 보자면, 전자는 색으로, 면으로 양감과 실체감을 갖게 하지만, 후자는 선의 구획으로 채색이 가해지더라도 부피만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의식적으로 이 두 축이 기획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1996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작품들은 양자가 교차적이거나 연계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양상의 두 축과 심층적인 시각언어의 독해를 위해서는 그의 초기작업부터 오늘에 이르는 변화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먹으로부터 출발한 초기 시대의 서정적 표현은 다각적 시도와 변화로 색채의 마법적 현실에 이르는 후기 시대까지 ‘행복코드’를 이어간다. 따라서 지금에 이르는 그의 변화의 과정을 좀 더 살핀다면 일관되게 제시한 ‘행복서사경’의 의미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수묵의 기저, 일상에서의 기쁨

1998년 그의 작업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대략 4단계 변화의 국면을 가지는데 그 첫 단계는 ‘수묵의 기저’에서 오는 발상과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시기적으로 1996년부터 2001년경까지 한지 위에 수묵 담채로 일상의 오브제와 가족에 대한 관찰을 주로 한다. <부부>, <아버지와 아들>, <꿈-밤하늘 자전거 타기>, <함께 하는 시간>, <아빠와 시소타기>, <그네타기>, <집으로> 등의 작업들은 대체로 화면 중앙에 관찰한 상황이나 오브제를 간결하게 수묵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때 먹의 표현은 스밈과 번짐과 같은 농담의 운용에 의한 화면 구성이거나 일기를 쓰듯 일상의 단면을 묘사하는데 집중되어 있다. 집, 나무, 사람, 시소, 그네, 유모차, 자동차 등 현실의 모티프가 원근감 없는 무중력상태로 등장한다. 오로지 화면의 중심은 일체의 사람, 자연, 사물의 형상이 차지한다. 아들을 등에 태우거나 유모차를 미는 여인을 바라보는 등 대부분 작품 속 인물은 자신을 포함한 가족으로 자전적이다. 이들 형상은 간결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경험에서 오는 대상의 실제적인 배치와 움직임 때문에 더욱 생동감을 갖는다.

이처럼 초기 시대의 수묵 표현은 그가 한국화에 근간을 두었다는 배경과 일상에의 집중이라는 맥락을 확인시키기에 충분하다. 1998년 당시 그는 보성고등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재직중이었다. 청소년기에 부모님과 이별한 후 그림은 가장 큰 위안이자 대안이었던 까닭에 대학을 졸업하고 교편을 잡았던 시기에도 여전한 삶의 동인이었을게다. 작업하기 위한 상황이 녹녹치 않았던 시간이 있었다 하더라도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는 데는 한국화를 전공하며 익혔던 태도는 곧 습관처럼 되돌아왔다. 그에게 수묵의 운용은 습성의 재인 recognition이자 창작의 기저가 되는 아비투스 habitus이다. 이 수묵과 담채의 운용은 단순히 대상묘사가 아니라 정서적 표정을 담고 있는 작가만의 표현을 만드는 기반이다. 특히나 수묵의 선은 서사적 의미를 담기에 다소 삽화 같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을 만큼 해석적인 요소가 강했고, 이것이 몇몇 문인들과의 작업을 같이 한 이유였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먹의 표현이 단순하고 간결하며 시각적 쾌를 수반하여 그의 작업에서는 서사적 계기로 작용할 뿐 아니라 강력한 표현의지로 부각된다.

2001년의 <집으로>는 이 초기 시대를 다음으로 잇는 브릿지와 같은 역할을 하는데, 앞서의 강하거나 진한 먹선과 먹면이 얇고 가늘며 스며드는 듯한 표현으로 완성된다. 같은 해에 제작된 <엄마, 아빠 그리고 나> 두 작품 역시 이제 곧 색채를 열게 되는 징후에 있다고 하겠다. 선적인 표현으로 여성의 원피스와 반팔 상의와 바지를 각각 그려놓은 두 작품은 화면 전체에 집, 나무, 자동차 등이 패턴처럼 드리워져 있다. 이 같은 구성은 현실적인 요소의 초현실적 상황의 자유로운 드로잉을 재현하는 이후의 양식을 예견하고 있다. 그의 초기 작업은 이렇게 일상의 행복의 시작과 끝이 가족에게 있음을 수묵의 운용으로 분명하게 드러냈다.

색채와 선으로부터, 마주보는 가족

2002년경부터 작가의 작업은 색채와 선에 의한 형상성 形象性을 모색한다. 그의 서사적 서정성을 조형 언어화 하는 시기로 압도적 선과 색이 이전의 수묵 운용의 표현과 다르게 활발해진다. 2001년 <노을을 담은 도시>에서 밝은 노랑이 주조를 이루는 도시 풍경은 선명해진 색채 만큼이나 작지만 분명한 건물 윤곽선을 통해 변화의 징후를 드러낸 바 있다. 이 실험적 표현의 시기는 색채와 선에 몰두하면서 표현적이면서도 초현실적인 서정성에 도달하게 된다.
먼저 색채에의 실험은 화폭에 스미는 붓과 먹의 번짐을 통해 은은한 발색으로 시작되어 간혹 강렬한 원색을 시도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붓의 필선이 두드러졌던 이전과 다르게 수묵화보다 수채화를 연상시키는 형상과 표면이 색으로 느껴지는 화면이다. <부부-사랑>, <숨바꼭질>, <세 그루의 나무>, <실내풍경> 등의 작품처럼 원색을 강렬히 쓰기 보다는 전체적으로 주조를 이루는 색채를 마치 흰 옷감에 물을 들이듯 화면에 안배하고 그 위에 상황 혹은 대상을 다시 색선과 면으로 완성한다. 이 시기 역시 풍경과 정물에 역점을 두고 내밀한 조형 실험을 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테이블 위의 화분과 장난감 자동차 등이 화면 정중앙을 차지한 <실내풍경>은 그런 작업들 가운데 색채와 필선 묘사가 도드라지는 작업이다. 풍경에서의 나무나 집의 작은 형상과 대조적으로 전형적인 정물화 구도에 가늘거나 두툼한, 직선과 곡선의 대범한 선과 색채가 자유롭게 녹아들어 있다. 달리 표현하자면, 작가만의 한국화적 시각과 서양화적 질료가 잘 융합된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작품을 지나 2003년, 4년에 제작된 <웃음소리-아름다운 순간들> 시리즈, <사랑-당신은 내게 가장 큰 기쁨이요!>, <웃음소리-봄, 여름, 가을, 겨울>, <웃음소리> 시리즈는 선적인 요소가 화면 가득 서사를 구축하며 상상과 현실의 교차 또는 중첩를 이루어간다. 앞서 말했던 ‘라인드로잉’의 작업들은 기억과 가상의 혹은 스케치 공간이다. 작가는 선으로 구획된 중첩적 공간을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명제부터 감지되는 지극한 사랑과 행복한 순간의 작업인 <웃음소리-아름다운 순간들>시리즈는 이러한 중첩의 축에서 가장 중요한 조형적 실험을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산수 풍경이 바탕을 깔고 그 사이에 아이, 어른, 꽃, 새, 나무, 집 등의 소재들이 화면 전반을 종횡하듯 중첩되며 몇몇 지점은 붉거나 푸른 색이 더해져 기억과 정서를 공간화, 시각화해낸다. 또한 2004년 제작된<사랑-당신은 내게 가장 큰 기쁨이요!>는 선적인 서정성과 행복한 가족 서사의 표본을 제시한다. 양산을 곱게 펴든 원피스를 입은 아내에게 등 뒤에 꽃을 감춘 채 다가간 남편 그리고 아내의 손을 맞잡고 해맑게 웃는 아이는 그대로 행복의 상징적 장면이다. 그의 행복한 서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아내다. 책을 읽는 모습이나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과 같이 매우 일상적인 순간이 ‘그림같이’ 아름답게 다가오게 하는 것이 그의 ‘행복서사경’의 첫 시작이다. 이처럼 2002년부터 2004년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에게 중요한 조형적 실험과 행복한 일상의 순간을 담아내는 형상성의 자신감을 회복하면서 그의 행보는 좀 더 강렬한 색채로 나아간다.

마법적 색채, 행복의 정원으로

작가의 ‘행복서사경’의 표현과 의미가 독자적 궤도를 만들어낸 것은 2005년부터 2012년경까지의 작업에서이다. 지난 시간을 관통하며 색채로 빛나는 풍경에 도달하는 이 여정은 자신만의 표현 세계를 보여준다. 작가의 일상과 가상, 묘사와 중첩의 두 표현의 축은 2005년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색채의 행복서사를 구축한다. 이전 시기까지 작가의 색채는 보다 조심스럽고 진지하여 때때로 강렬한 시도를 했다지만, 뚜렷한 색채 코드를 가진 것이 아니었다. 예컨대 <바다를 건너 당신에게로>라는 작업은 처음으로 색면의 의도적 분할과 이미지 묘사가 결합한 사례이다. 강렬한 원색의 색덩어리가 평면을 떠다니고 그 위에 꽃을 들고 날아가는 형상 등을 그리는데, 머지 않은 색채 풍경을 위한 과감한 색면 분할을 시도한 것이다. 이러한 색면들의 안배와 풍경의 소재 그리고 색점들이 만나게 되는 시점은 2006년경이다. 색채에 대한 고민은 발색을 받쳐주는 지지대와 안료의 교감 또는 상호작용을 전제해야 하는데, 작가는 줄곧 한지와 수묵담채 또는 혼합매체를 사용해왔다. 과슈, 콘테나 목탄 또는 혼합매체까지 적용하며 이미지를 완성하곤 했는데, 한지가 주는 질료적 안정감과 정서적 채도로 인해 햇볕에 빛추는 듯한 눈부심을 가져다 주진 못했다. 2006년경 그간의 지지대를 캔버스로 바꾼 것은 작가로서 의미심장한 시도를 한 것이다. 적어도 캔버스와 유채를 사용하면서 발색 뿐 아니라 필선에 의한 표현에서나, 화면이 꽉차는 변화를 이끌게 된다. 색점이 시도된 2003년을 지나 2005년 <가을-집으로>와 같은 작업은 그의 화풍이라고 알려진 색채 풍경의 전형성을 보이기 시작했고 2006년을 지나면서 화면이 환한 색채로 빛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색채와 조응하는 지지대와 자유로운 붓터치는 그의 행복 풍경을 확장하는데 보다 적합한 선택이었다. 2007년 이러한 시도가 안정화의 궤도에 들어서면서 작가는 2008년 여주로의 이주를 감행한다. 한층 풍요로운 색채 풍경 속의 가족은 화목의 정석을 보여주듯 집 안이나 정원 어디에서나 사랑스런 표정과 움직임을 지닌 화면의 주체로 등장한다. 꽃들로 둘러싸인 ‘가족도’는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색점이 모여 꽃으로, 사람으로, 풍경으로 확대되는 그의 행복도는 누가 보아도 기분 좋은 밝음과 에너지의 색채들에 의해 충만해진다. 때때로 이러한 화사하고 사랑스러움이 그대로 자신의 삶의 단면과 닿아있음에도 재현적이라는, 혹은 상상된 행복의 이미지로만 읽혀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그림 속의 행복 코드는 적어도 누군가의 행복을 부러워하거나 대단한 욕망을 가진 삶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파랑새에 집중하고 기뻐하는 성찰적이고 자족적인 삶의 태도에서 기인한 것음을 주목해야 한다. 그가 그리는 가족은 매일 마주하는 새로운 날처럼 익숙하지만 소중한 존재인 까닭에 반복적으로 재현하고 상상하고 예찬하는 것이리라. 그의 그림이 주는 최고의 메시지는 누구나 자신의 삶의 순간과 사람의 관계에 집중하고 다시 내면과 주변을 바라보게 하는 긍정과 위안이라는 데 있다. 누구나 행복하기 위해 살지만 자신의 파랑새를 알아보지 못하고 타인의 파랑새를 갈망하는 욕망의 시대에 작가의 작업은 그 자체로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소중한 주변을 환기시킨다. 이 절정의 색채 향연은 2008년부터 2010년에 이르는 동안 <즐거운 하루>, <울긋불긋 꽃대궐>, <아름다운 풍경>, <노래 중의 노래> 등에서 현실 공간의 묘사로 점철된다. 흥미롭게 또다른 한축으로서 ‘라인드로잉’은 가상의 중첩이 드러나는 <하늘 속 웃음소리>시리즈 등에서 확연해진다. 파스텔과 같은 부드러운 단색이 주조를 이루고 하얀 선들이 구획과 형상을 만들어 내어 이들 절정의 색채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동일한 시기에 분명한 대조를 이루는 이같은 양대 축은 지속적으로 상호 작용 하게 되고, <우리집>, <가족> 등에서는 마침내 색채들이 여백에 스미는 양상을 드러내 그의 ‘행복서사경’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풍경 속 행복지형도

그의 이러한 색채풍경이 실제 장소로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2013년 <행복한 마을로 가는길> 시리즈를 통해서이다. <노란 바다가 보이는 풍경>, <청사포의 봄> 등의 작업은 그가 지속해온 가족과 주변 공간으로부터 또다른 장소가 조감되는데, 지난 시간 동안 구축된 색채 묘사의 어법이 특정 지형과 만나면서 생동감 넘치는 개성적 장소로 거듭난다. 진경산수와 같이 실제 장소의 특성을 추출해낸 지형의 구축적 묘사가 그의 다채로운 색채로 인해 환상적, 동화적으로 재현되어 작가만의 독자적 조형언어가 확고해진 것임을 깨닫게 된다. 2014년 제주가 배경이 된 작업들 <감귤나무 사이로>시리즈, <성산포가 보이는 실내풍경>, <작은마을 이야기> 등은 이전 시기의 화면을 가득 채운 채색들로부터 여백을 찾아내고 색묘와 구도의 안정성, 그리고 붓터치들의 완만한 흐름을 이끌어내고 있다.

국내 뿐 아니라 국외로 확장된 작가의 시선은 2015년 <눈부신 나의 아말피>, <양떼구름이 보이는 풍경>, <소나무가 보이는 아말피해안>, <사이프로스 나무사이로>, <꽃피는 포지타노> 등의 작업에서 분명 서구 풍경화가 지닌 구도나 특성을 취하지만 더욱 많은 여백과 부드럽게 뉘어진 붓터치로 실재감 있는 장소성을 환기시킨다. 여전한 그의 채색의 밝고 화사함은 작가만의 고유한 개성으로 이어졌다. 다만 초기 풍경을 다루었던 메타포 넘치는 표정 대신 매끄럽고 세련된 그의 색채와 묘사가 드러난다. <독도>, <베네치아로 가는 길>, <여주>, <맨하튼의 봄>, <뉴욕>등 국내외 여러 장소들이 찾아지고 그려지면서 색점, 색선, 색면이 자유롭게 형상을 만들며 표현적이라할만한 붓터치들로 평면을 완성한다.

그렇게 그의 ‘행복서사경’은 주변과 일상으로부터 타자들의 세계 속으로 확장되고 있다. 그가 그려내는 다양한 장소의 풍경에는 여전히 사람들의 이야기와 표정이 있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된다. 그의 작업실에서 만난 오스트리아의 풍경 대작 속에서도, 길을 따라 걷는, 어디쯤에선가 물놀이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두 재현되어 있다. <뉴욕-센트럴파크>, <뉴욕-브라이언 파크>에서 즐비하게 늘어선 가로수들 사이로 벤치에서 담소를 나누는 나누는 이들이 정겹게 드러난다. 그의 정원이나 집에서 주체는 그의 가족이었듯이 뉴욕의 공원에도 그곳을 즐기는 이들이 주인공이다. 2018 년<카프리섬의 여름>과 같은 작업에서 배 위에서 노는 이들이나, 선착장 너머 자동차를 향해 걷는 가족들이나 모두 그의 시선이 마주하는 그림 속 사람들이다. 그에게 풍경이라하면, 행복의 지형도로서 사람들이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게 하고 있다. 특히나 그의 작업실에서 만난 <에즈 빌리지-지중해가 보이는 풍경>은 그의 표현적이면서도 절제된 붓터치와 하늘과 바다의 평면이 수평의 안정감과 평온을 느끼게 하는데 여기서도 예외없이 작은 시골 모퉁이를 걷는 가족을 보게 한다.

방문 당시 제작중인 작업에서 강렬하고 정열적인 꽃을 질감 넘치는 붓질로 표현한 2020년 <푸센>은 묘사가 아닌 기억의 단서이자 느낌의 재현을 이끌고 있어 한층 흥미롭다. 갈수록 붓의 사용이 다양하고 형태와 합일을 이루는 것과 다르게 정서적 흘림과 뭉침이 극대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표현적 작업과 대조를 이루는 그의 ‘라인드로잉’ 선들의 중첩 공간은 <뉴욕>에서 다양한 모티프들이 서로 겹치고 섞이는 이미지로 재현된다. 하늘 공간을 연상시키는 스카이 블루에 흰색의 초크로 그려놓은 것만 같은 심연의 정서, 감각, 기억이 고리를 만들며 확장되는데, 색채와의 조화 또는 시간적 숨 고르기를 하며 그의 작업은 그렇게 ‘행복서사경’ 의 진행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행복한 서사 풍경은 1996년부터 현재까지 크게 4번의 변곡점을 지나오며 독자적 표현 양식으로 진화해왔다. 정서적 붓질과 재현적 테크닉 사이의 간극을 즐기며, 한국적 시각과 서양적 체계를 조율하며 색채 풍경의 행복한 서사를 이어온 것이다. 그의 작업은 여전히 진행중에 있으며, 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수묵 시대의 압축된 터치 속에서나, 색채가 초절정을 맞이한 정원의 한 가운에서나, 볼프강 호수의 긴 풍경에서나, 그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초기 대단히 자전적인 인물과 테마로부터 최근 장소성이 뚜렷한 풍경에서의 인물과 지형은 그래서 그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형상들이다. 색채의 재현이 두드러지거나, 라인드로잉의 상상이 부각되거나 간에 그의 ‘행복서사경’에는 사람이 만들어내고 보여주는 실재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그려내는 풍경 속 가족과 사람 이야기는 다 유사해보이지만 모든 대상이 표정과 시점, 계절에 따라 다르듯이 모두 새롭게 거듭나 다른 것임을 확인시키고 보게 한다. 그것이 그가 일깨우는 ‘관점’의 여백이다. 다름의 ‘관점’으로 그의 ‘행복서사경’은 매일 고마움과 기쁨을 가지고 세상과 만나는 그의 독백이자 방백으로 지금도 그의 손과 눈은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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